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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를 만들자] <2> 원칙의 힘, 편법의 독

사회적 합의없는 법은 갈등만 키운다<br>공감대 형성보다는 성과 급급한 한건주의 만연<br>법집행도 흐지부지 "안지켜도 그만" 인식 팽배<br>경제개혁 과제들마저 되레 성장 걸림돌 될수도



한국사회의 균열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역 갈등은 그대로 내포한 채 국책사업, 사립학교법 개정 등 각종 현안 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서로 칼끝을 겨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사회통합적 시장경제’,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신 강령으로 채택한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사회가 얼마나 반목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나를 반증하는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해답은 가장 단순한 ‘원칙의 힘’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법ㆍ제도를 만들면서 공감대 마련이라는 기본 틀을 무시한 채 ‘무엇인가 단시일 안에 이루겠다는 조급함’이 만들어 낸 결과다. 이렇다 보니 타협과 중재의 문화는 싹 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건주의는 법령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인가 보이기 위한 일환으로 새 법령을 만들다 보니 총 법령 건수가 4,000건에 육박했다. 우리나라 총 인구가 4,725만명인 점을 고려해 보면 법령 1건이 1만명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사회적 합의를 뒤로 미루고 법률을 우선 만들어 집행하고, 나중에 하위 법령에서 고치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돼 있다”며 “이렇다 보니 하위 법령인 시행령ㆍ시행규칙이 상위 모법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공감대 마련 보다는‘일단 벌이고 보자’ = 개정 사학법을 둘러싼 갈등, 노사정 대타협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이해 당사자간 대립, 새만금 등 국책사업을 보는 상반된 시각, 행정도시ㆍ혁신도시를 놓고 벌이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지자체와 지자체 간의 갈등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법률 전문가는 “정부가 사회 전체적인 합의 보다는 현 상황이 무엇인가 대단히 잘 못 돼서 이른 시일 안에 반드시 고쳐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렇다 보니 현안 마다 자연스럽게 대립구조가 발생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현재의 분위기를 보면 뭔가 잘못 될 까봐 우려하고 걱정해서 공감대 마련 보다 미리 규제 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며 “가부장적 가장 처럼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려다 보니 이 같은 일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예로 노사정 대타협을 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 시스템 하에서 노ㆍ사가 상생의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한다. 선진국들이 수십 년에 걸쳐 완성한 사회협의 시스템을 조급하게 안착 시키려 했던 것이 문제인 셈이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번듯한 정당도 없고, 민노총ㆍ한국노총 등의 대표성도 미약한 상태에서 타협을 이룬다고 했을 때 하위 노조에 까지 영향을 미치겠느냐”며 “현재 사정에 맞는 의제를 설정해야 되는 데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학법, 교육개혁, 행정도시 등 각종 현안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법률 만능주의, 정치적 야합은 더 커지고 = ‘벌이고 보자’는 사고는 그대로 법령에 반영되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새롭게 제정된 법률이 100건에 이른다. 이에 따라 시행령ㆍ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까지 포함하면 현재 총 법령은 4,000건에 이르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제정되다 보니 야합의 문은 더 넓어졌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공청회 등 합의 과정 보다는 나중에 국회에서 수정할 것에 대비해 강한 톤으로 법을 만드는 것이 그간의 관례”라고 법 제정 과정을 솔직히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야당의 수정 요구에 대해 내부적으로 새로운 안을 만들어 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간혹 야당이 이에 응하지 않아 정부 원안 대로 법이 통과될 때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사회적 합의가 반영된 제도ㆍ법 보다는 정치적 합의를 더 고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보니 각종 공청회 등은 사실상 형식적 요건으로 전락하고 있다. ◇법령 4,000건, 준법정신은 취약해 지고 = 법ㆍ제도 자체가 이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보니 우리 국민들도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폭력시위를 해도 그에 따른 규제는 미약하다. 불량 식품을 팔아도 그 때만 지나면 그만이다. 공무원은 잘못해도 처벌이 약하다. 부정부패를 하고, 음주운전을 해도 8.15 광복절 등 때만 되면 어김 없이 사면되곤 한다. 법ㆍ제도 홍수 시대에 살지만 정작 준법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허찬국 본부장은 “기존에 있는 법ㆍ제도를 강력히,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이 근본원인이다”고 설명했다. 또 법ㆍ제도 마련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대 형성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다 보니 국민 스스로 법을 지켜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관념이 스며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경제포럼, 투명성기구 등 국제 기구ㆍ단체들이 평가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무역대국 12위인 한국. 하지만 국가 청렴성, 노사 문제, 공공부문 부패 정도 등에서는 이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적 합의 없이 편법으로 탄생한 법ㆍ제도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양상이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갈등 해결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의 르네상스를 향한 경제개혁 과제들마저 사회 갈등의 함정에 매몰될 것”이라며 “이는 저성장 기조 고착화로 연결될 우려가 다분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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