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당국은 최근 영흥 화력발전소 7~8호기 증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에 위치한 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는 수도권 전력의 20%를 책임지는 핵심 발전원이다. 현재 총 4기의 석탄화력 발전소가 운영 중인데 전력당국은 이곳에 내년까지 석탄화력 5~6호기를 짓고 앞으로 7~8호기까지 지어 수도권 전력공급의 40%를 맡길 계획이다. 지금처럼 충청 이남권에서 대부분의 전력을 끌어오면 송전 손실이 많고 수도권 수급의 불안정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시와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반발과 환경부의 미온적 태도로 영흥화력 7~8호기 증설 문제는 수개월째 결론이 나질 않고 있다. 국내 전력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수도권은 영흥화력이 제때에 증설되지 않으면 만성적인 전력 걱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설비투자에 발목 잡혀 있는 국내 전력수급의 한 단면이다.
◇수요 따라가지 못하는 발전소 건설=수요조절은 전력난을 줄일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충분한 공급 체계를 갖춰야만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전력난의 가장 일차적인 원인도 공급(전력 설비)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정부의 전력 수요 예측이 잘못된 탓도 크지만 전력 설비 투자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도 크게 작용한다. 원자력발전소는 말할 것도 없고 화력발전소들도 새로 지어질 때마다 환경ㆍ보상 갈등이 점차 첨예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이 작다 보니 발전소 입지 및 송전선의 선하지가 민가와 인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는 경제성을 위해 발전소를 점점 대규모화하고 송전선로는 초고전업화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 문제를 둘러싼 정부 부처 간 엇박자, 시민단체들의 반발, 주민 보상 문제, 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맞물려 발전소 건설이 추진될 때마다 잡음은 커진다.
이렇다 보니 발전소 준공 지연 및 취소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제3차 전력수급계획을 기준으로 할 때 당초 올해 가동 예정이었던 415만㎾에 달하는 설비의 준공이 지연 또는 취소됐다. 이는 전력량으로 따지면 원전 4기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최대 부하 대비 초과 발전설비 용량의 비율을 뜻하는 공급예비율도 10여년 전만해도 15% 수준은 유지했으나 최근에는 10% 미만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원전 1~2기만 가동이 중단되도 전력 수급이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다.
◇발전소 지은 뒤에는 송ㆍ변전 설비 구축이 발목 잡아=설비 투자 갈등은 발전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송ㆍ변전 설비 문제가 갈등의 핵심이 되고 있다. 발전소에서 전력이 생산돼도 운송이 어려운 것이다. 최근 전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밀양 송전탑 사례가 대표적이다. 송ㆍ변전 설비를 둘러싼 갈등은 밀양 지역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상황이 밀양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북당진~신탕정 구간 ▦신울진~강원~신경기 구간 ▦군산~새만금 구간 ▦신중부변전소 및 송전선로 등도 모두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신울진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 동남부로 운송하기 위한 신울진~신경기변전소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한국전력이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송전선로가 지나는 강원도 횡성 주민들이 지역 우회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도 환경 피해 등을 이유로 주민들의 반발 움직임이 보인다. 한전이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최근 입지 선정 절차를 밟고 있는 신중부변전소도 유력 후보지 4곳에서 상당수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사업은 충남 서해안에서 생산된 대단위 발전전력을 중부권에 직접 공급하기 위한 것인데 유력 후보지인 충북 진천과 경기 안성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강경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방통행의 설비 투자 멈추고 신뢰 회복해야=전력당국은 그간 지역 주민들의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ㆍ지역 이기주의) 현상을 설비 투자 지연의 원인으로 지적하곤 했다. 하지만 님비 현상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해도 전력당국이 그간 너무 일방통행으로 전력 설비 투자를 진행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먼저 수렴하기보다 경제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일방적인 전력 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해놓고 행정대집행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그간 정부의 전력 설비 투자 집행 방식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 주민들과 선행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그간 정부의 전력 설비 계획은 너무 외길이었고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을 때도 다른 대안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며 "정부가 경제성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 비용 등을 고려해 계획 단계부터 주민들과 소통하고 반대 의견에 대한 대안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요가 인접한 곳에 LNG(액화천연가스)나 열병합 등 소규모 발전소를 짓는 방식으로 전력 설비 입지 계획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건설비용이 증가할 것을 각오하더라도 친환경 화력발전 기술 개발에 좀더 투자하고 도시 인근 등 수요와 맞물린 곳에 소규모의 발전 설비를 짓는 방향으로 설비계획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