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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위 만성피로 탓인가] 개혁업무 뒤뚱뒤뚱
입력1999-03-17 00:00:00
수정
1999.03.17 00:00:00
구조조정의 선봉장인 금융감독위원회가 피로증후군에 걸렸다.재벌개혁과 금융구조조정의 대미(大尾)를 목전에 두고 피로가 누적돼 머리부터 손과 발이 따로 놀고 발을 헛디뎌 뒤뚱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5대 재벌개혁·워크아웃 등의 기업 구조조정작업, 제일은행 매각 등 은행경영정상화와 보험·종금 처리를 포함한 금융구조조정 전반이 휘청거리고 있다. 빅딜에 걸려 재벌개혁은 부지하세월이 되고 있고 제일은행 매각과 부실보험 처리문제 등을 놓고는 금감위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감위 당국자들은 기업구조조정이 지체되는 데 대해 은행과 기업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재벌그룹 회장들이 목전의 이익에만 급급, 약속한 빅딜일정을 이행하지 않고 은행들도 약속을 어긴 그룹에 대한 제재문제를 논의하면 발을 빼기에 급급하다는 주장이다. 워크아웃도 이미 부실화된 기업의 경영권에만 집착하는 기업주들의 태도와 면피를 위해 문제해결을 당국에만 미루려 하는 은행들의 잘못된 관행으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금감위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으로 이행하고 있다』면서 『법과 제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견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이끌어온 금감위의 입장에서는 미리 고려했어야 할 상수(常數)일 뿐이라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이를 주어진 현실로 인식하지 않고 초기의 성과에 안주하고 긴장을 풀었다가 예기치 못한 장벽에 부딪쳐 추진력이 약화됐다는 분석이 많다. 반도체 빅딜과 자동차·전자 빅딜의 경우 충분히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가시적인 성과도출에만 급급, 조급한 일정을 제시했다가 일정순연을 자초해 스스로 권위를 훼손시켰다. 금감위는 더이상 일정을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렇다고 당초 공언한 여신회수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자인하고 있다.
금감위가 방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곳에서 드러난다. 구조조정의 대오가 흐트러지고 다른 목소리와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제일은행 매각과 관련, 이헌재(李憲宰) 위원장의 의중과는 달리 뉴브리지와 협상을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때 힘을 얻었다. 금감위는 은행의 경영참여를 배제하고 전문가집단이 경영에 참여하는 CRV(기업구조조정기구)를 통해 워크아웃 기업을 정상화시키겠다고 올해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반면 워크아웃을 실제로 담당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위원회는 이와 반대로 은행이 직접 이사회를 지배하는 방법으로 워크아웃을 실시하도록 공문을 내려보냈다.
5대 재벌의 경우 부실 계열금융기관을 자기 책임으로 처리하고 신규진입시에는 손실분담규모를 확대한다는 전략도 5대 재벌계열 보험사(위장계열사 포함)의 부실처리 문제를 놓고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위가 이처럼 흔들리는 이유는 외부여건의 변화와 달라진 내부 분위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경제여건상 금감위의 추진력이 약화된 느낌이다. 금감위는 구조조정 재원이 바닥나 원칙에 입각,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처리하는 데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또 경기회생으로 돌아선 경제정책 기조로 인해 재원이 있더라도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큰 칼을 사용하기는 힘든 상황이고 남아 있는 구조조정 대상도 기댈 곳이 없던 과거와는 달리 어느 정도 버틸 여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이완된 내부분위기가 추진력 약화의 주요인이라는 지적도 많다. 일부 관계자들은 공공연히 구조조정의 수술작업이 사실상 끝났다고 언급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던 의욕은 사라진 느낌이다. 또 구조조정의 진행상황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지지를 통해 난관을 극복하던 구조조정 전략은 사라지고 비밀지상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갓 넘겼을 뿐 수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는 국내외 지적과는 달리 전시체제를 쉽게 풀고 평상시로 넘어가 너무 일찍 관료주의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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