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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곳 원서넣어 면접은 5곳뿐
제2의 고3생활 언제까지 하나… 공시족도 기약없는 시험공부
정규직 전환 여부 알 수 없는 계약직들도 하루하루가 고비
지난주 말 서울경제신문이 만난 취업 준비생들은 하나같이 "정확히 뭘 하면 취업을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두드리고 두드려도 취업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졸업 예정자인 김모(24)씨는 지난해 하반기 실패를 곱씹으며 올 상반기 공개채용 시즌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총 120여곳에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면접 기회를 얻은 회사는 불과 5곳. 김씨는 "토익점수도 소위 말하는 안정권에 있고 학점도 높은 편인데 도대체 서류에서 뭐 때문에 떨어지는지 알 수가 없어 점점 자신감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들이 비중을 높이고 있는 인문학도 대학생 구직자들에게는 부담이다. 창의성을 평가하겠다는 목적으로 면접에서의 비중이 높아지던 것에서 최근에는 한국사능력검증시험 성적을 요구하는 쪽으로 추세가 바뀌고 있다. 여기에다 회사별로 모두 다른 인적성시험을 준비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여름 한 사립대학교를 졸업한 김모(27세)씨는 "기업별로 모두 다른 인적성 교재를 사서 준비하고 있고 그 가운데 몇 곳은 인터넷 강의까지 듣는다"며 "당장 이달 말께 있는 한국사시험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취업을 위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이게 취업 후 쓸모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서류전형의 문턱조차 넘기 힘들다 보니 취업아카데미를 찾는 구직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연계돼 있는 회사에 아카데미의 추천서가 있으면 서류전형을 건너뛸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다.
최근 청년취업아카데미에 들어간 이모(27)씨는 "4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100명에 뽑혔는데 취업도 아니고 취업을 위한 학원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면서 "20여곳의 회사에서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한 터라 어디라도 합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초조하기는 마찬가지. 나름대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다 커피숍이나 대학교 도서관에서 손에 잡히는 공부를 하는 사기업 취준생들이 부럽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서울 노량진에서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29)씨는 "오전7시 반에 시작되는 특강부터 저녁 스터디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들어오면 오후11시가 넘는다"면서 "제2의 고3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생각하면 처음 시작할 때의 꿈이 점차 흐려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특정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모여 있다는 점 역시 심리적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지난해 국가직 7급 공무원 시험의 선발인원이 늘어나면서 최근 5년 중 가장 낮은 경쟁률을 나타냈지만 그래도 80대1이 넘는다. 경쟁자들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신경은 날카로워진다. 공무원시험 준비생 강모(27)씨는 "학원이건 독서실이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나면 바로 조용히 하라는 메모장이 붙는다"면서 "노량진은 한마디로 살벌한 동네"라고 전했다.
취업은 했지만 완생(完生)을 위해 몸부림치는 계약직들도 하루하루가 고비다. 조금만 밉보이면 '그만두라'는 상사의 엄포가 날아들고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지만 정규직 전환 여부는 알 수 없다.
지난해 4월 한 보안업체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사무직 일을 하고 있는 김모(26)씨는 출퇴근 시간만 3시간이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집 근처인 서울 강북의 한 지점. 그러나 회사는 8월부터 경기도 파주지점으로 발령을 냈다. 계약직 신분에 혹시라도 근무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된 김씨는 겉으로 웃으며 인사발령에 따랐다. 당초 정규직 전환조건인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김씨는 "2년을 채우면 무기계약직은 해주지 않을까요"라고 되묻고는 "사실 정규직이 되더라도 연봉이 30만원밖에 안 오르는 것을 위안 아닌 위안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임모(29)씨는 현재 경제 관련 연구소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올해 7월이면 1년 계약기간이 끝나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임씨는 "지난해 말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이틀간 휴가를 냈다가 상사로부터 '그만두는 게 어떠냐'라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경력으로 인정받으려면 1년은 다녀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608만명. 2007년 고용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기간제법이 시행됐지만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오히려 3만명가량 늘었다. 여전히 임금근로자 3명 중 1명은 계약직인 게 현실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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