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경험상 판사로 처음 출발했을 때 나는 받기 싫은데 개인적으로 저를 겨냥해서 주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돌린다거나 방에 있는 총무에게 놓고 가는 것이라 거절하기 힘들었어요. … 그런 돈은 도덕적으로 별 거리낌 없이 주고 받을 수 있죠. 그렇게 발이 젖는 거예요. 그래서 저(김영란 서강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시절 초기부터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못 받도록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 2012년 12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리나라는 176개국 중 45위를 기록했다. 2010년 39위, 2011년 43위로 순위가 3년 연속 떨어지고 있다. 이런 숫자들이 보여주듯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상화된 부패는 유행처럼 번진 '공정사회'나 '정의' 같은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를 옭아매고 있던 '부패의 사슬을 어떻게 끊어버릴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소수자의 대법관''독수리 오형제'라 불렸던 전직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 그리고 '헌법의 풍경''불멸의 신성가족' 등을 통해 법과 법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고발해온 김두식.
두 명의 법조인이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부패의 구조를 밝히고, 국민 모두가 현실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을 책으로 펴냈다.
전직 대법관과 전직 검사로서, 두 저자 또한 부패와 청탁의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고백하며 책은 시작된다.
지인의 재판을 잘 봐달라고 부탁했다가 선배로부터 무안을 당한 이야기, 친구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가슴 쓸어내린 이야기로 시작해,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부패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아울러 저자들은 질문한다. "'그들만의 리그'를 비난하는 다수의 착한 사람들도, 뒤로는 자신을 지켜줄 '빽'과 연줄을 찾고 있지 않느냐?"고.
저자들은 소수의 '악당'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부패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며, 처음부터 부패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규범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부패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 했어야 했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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