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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맹신·부조리에 대한 풍자

앙드레지드 '교황청의 지하도' 내달 초연동기없는 살인. 제1차 세계대전의 총성이 시작되던 1914년. 파리에서 발표된 앙드레 지드의 신작, '교황청의 지하도'는 이런 낯선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종교와 윤리, 문학제도의 맹점을 꼬집은 문제작이었다. 오는 4월19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서 열리는 연극 '교황청의 지하도'는 지드가 직접 각색, 연극 무대에 올린 바 있는 이 소설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올해가 지드 서거 5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더욱 뜻깊게 다가오는 시도다. '라프카디오'라는 한 젊은이가 있다. 후세에 의해 '순수한 자유인의 표상'이라 일컬어질 그 인물은 고급 창녀인 어머니와 백작 사이에서 난 사생아다. 극중에서 그는 이복 형의 동서인 아메데를 이유없이 기차에서 밀어뜨려 죽게 한다. 동기없는 살인이라니 엉뚱하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드는 이를 통해 종교나 윤리, 혹은 문학상의 맹신자들에게 노골적 조소와 비난을 퍼붓는다. 우리가 맹신하는 그 무엇, 기성의 종교와 인습적인 도덕이 만들어 낸 지배 질서를 고발하고 단죄하는 방법으로 '무상(無想)의 행위'를 실천하는 인물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이유없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범죄자라 불릴 이유가 없다"고. 범의를 통한 도덕 위반이 아닌 무동기의 무상의 행위인 다음에야 도덕적으로 구속할 명분이 없기에 죄가 아닌 게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기존 질서의 맹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쯤되면 '20세기 소설의 복음서' 역할을 했다는 이 작품의 소설사적 의의는 덮어두고라도 당대의 지드가 '젊은이들의 사상을 타락시키는 인물'로 비난 받은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언뜻 무거운 작품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시종일관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극은 통렬한 풍자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일종의 소극(笑劇 Farce)에 가깝다. 라프카디오에 대한 정보가 이어지는 1막에 이어 2막에서는 '지금의 교황은 가짜이고 교황은 교황청의 지하도에 갇혀있다'고 주장하는 무리의 사기 행각이 어처구니 없게 먹혀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스토리가 얽히고 ?혀 추리소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3막 역시 현학적이라기 보다는 우스꽝스럽다. 하기야 인간과 사회의 심층을 추적, 부조리한 속물성을 고발하는 데에는 풍자 만한 것이 없는 법이다. 극의 형식에 있어서는 등장인물이 한 장면 끝에서 바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영화 같은 기법의 전개가 도입된다. 음악 역시 빠르게 변하는 시간과 장소를 신속하게 연결시키는 역할에 치중한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희곡작가, 엄인희의 '별거 아니야' 라는 노래가사에 곡을 입힌 주제가로 연극이 시작되는 점도 이채롭다. 한편 이 연극은 이미지 중심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위주의 정통 연극이다. 한때 연극의 주된 관객층이었으나 지금은 연극을 떠난 중장년 관객을 위해 이들 관객이 볼 만한 정통 연극을 선보임으로써 공연장을 채우겠다는 게 제작진들의 각오다. 젊은 스타 중심의 캐스팅 관행에서 벗어나 절반 이상의 배우를 신인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했다. 작품의 시대배경은 19세기 말, 세계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와 로마. 로마 교황청이 한켠에 거꾸로 매달린 무대세트는 온통 신문으로 도배돼 있다. 종교제와 같은 기존 질서에 대한 지드의 반발과 부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현시대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며 '맹신되는 그 무엇'으로 자리잡은 신문에 대한 풍자 역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셈이다.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인 문호근이 연출과 번안을 맡았고 음악은 황성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무대디자인은 박동우가 담당했다. 송영근 오세준 원창연 최명수 이지영 최은영 등이 출연하며 이달 말까지 조기 예매하는 관객에게는 20%의 할인혜택도 주어진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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