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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힘들여 개발한 핵심기술의 무단유출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은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시행, 중소기업의 핵심 기술정보를 보관해 두고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 임치물을 이용해 보유 사실을 입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술임치제도의 내용과 성과를 자세히 알아본다. /편집자주
#음향 솔루션 전문업체 이머시스는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앞두고 핵심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다. 납품하기로 한 일본 대기업 산요가 소스코드 등 핵심기술 제공을 요구했기 때문. 애써 개발한 기술이 송두리째 넘어갈 상황에서 이머시스는 기술 유출을 막아주는 기술임치제를 도입했다.
기술임치제로 무장한 이머시스는 기술 보호는 물론 산요와 수출계약도 성사시켰다. 지금은 국내외 40여개업체 100여개 모델에 솔루션을 탑재해 프랑스, 일본 등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자동화 설비 및 로봇시스템 전문업체인 SFA는 독창적인 설계 노하우가 자산이다. 만약 비법이 유출될 경우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SFA는 과거 직원의 이직으로 중요한 기술자료가 유출됐지만 대응 방법이 없어 가슴만 쳤던 경험이 있다.
이후 기술 보호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고, 유출과 도용을 막기 위해 기술임치제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SFA는 기술임치제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기술유출 시도 자체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술 유출로 가슴앓이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기술임치제도가 든든한 보호막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그동안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기술을 뺏어 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임직원들의 이직으로 기술이 유출돼도 대응책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하지만 정부가 안전하게 보호하고 개발 사실을 입증하는 기술임치제를 활용하면서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게 된 것.
기술임치제도가 중소기업에 효자 노릇을 하자 임치 건수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따르면 지난 4월 임치 실적이 1만건을 돌파했다. 지난 2008년 첫 도입 후 2011년까지만 해도 1,000건에 그쳤으나, 최근 제도의 실효성과 효과가 입증되면서 10배나 급증한 셈이다. 1만건 돌파를 기념하고 제도의 취지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내달 초 '중소기업 기술보호 세미나'도 열린다.
임치제를 활용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도 확산되고 있다. SK텔레콤은 2,7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를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로 양성하고, 신뢰를 돈독히 하기 위해 임치제도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협력사에 임치제도를 소개하고, 임치 가능 기술에 대해 삼자간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전력도 중소기업 협력업무 지침에 '기술자료 임치 지원' 조항을 마련해 임치 및 갱신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자회사 6곳에 임치제를 의무화하고 있다.
임치제는 특허를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특허는 심사를 거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임치는 이용순간부터 바로 법적 추정효과가 발생한다. 또 특허는 누구나 열람과 복제를 할 수 있지만, 임치 기술은 개발기업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고 영구 보호된다. 아울러 기술정보 외에도 회사의 운영, 매출 등 경영기밀도 보관할 수 있다.
대·중기재단 관계자는 "기술임치제는 동반성장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인 동시에 거래관계의 안정성과 신뢰를 더 하는 장치"라며 "사업 동반자와의 신뢰관계를 구축시켜주는 동시에 기술 경쟁력을 응원하는 제도로 중소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용순 기자 seny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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