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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ITU와 정부의 블러핑


지난 24일 부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에서 이재섭 카이스트 융합연구소 박사가 한국인으로나 개최국 인사로는 처음으로 정보통신표준화(ITU-T) 총국장으로 선출됐다. 3명의 후보가 나와 1차에 선거가 끝난 건 이례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였다.

당초 미래부와 외교부는 지난 2006년과 2010년 개최국이었던 터키와 멕시코에서 잇따라 후보가 낙선한 것을 예로 들어 "개최국은 출마하지 않는 게 관례"라고 당선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언론과 국민은 이 때문에 이 박사가 행여 '개최국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러나 부산 현지에서 접한 각국 정부 대표단의 기억은 정부가 호소한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전권회의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이전에도 개최국 불이익 따위는 없었다"며 "이 박사는 되레 개최국 이점을 크게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직전 회의에서 꼴찌를 기록한 멕시코 후보의 경우 내부 정치 상황으로 인해 자국 정부에서 조차 지지를 철회한 것이 낙선의 가장 큰 이유였다고 기억했다. 사무차장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터키 후보 역시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자금줄 가운데 하나인 중국 후보와 맞붙는 바람에 불운하게 밀려났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당시 대항마는 자오허우린 차기 ITU 사무총장이었다.

정부의 주장처럼 개최국 후보라는 사실이 탈락의 이유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던 셈이다. 이마저도 정부는 개최국 후보로 출마한 사람은 멕시코가 사상 처음이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 이 박사 당선의 어려움을 과장하기 위한 블러핑이었다.



이번 이 박사의 ITU 고위직 당선은 분명 국가적인 쾌거다. 다만 정부가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과거 사례를 과장ㆍ왜곡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마지막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큰 도움을 줬다'는 내용을 꼭 넣어달라"고 신신당부하던 미래부의 태도엔 쓴웃음마저 나왔다. 지나친 욕심이 때론 잔칫집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윤경환 정보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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