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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에서 한국은 왜 日에 뒤졌나
입력2003-05-26 00:00:00
수정
2003.05.26 00:00:00
강동호 기자
■일그러진 근대 박지향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한국사에 있어 19세기는 없다. 누구나 주위에 꽂혀 있는 책을 펼쳐 보면 알 것이지만 조선 후기 영ㆍ정조시대 18세기까지의 역사는 장황할 정도로 설명되다가 19세기 순조이후 헌종ㆍ철종의 시기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단축된다. 겨우 각 지방의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민란과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말하는 `고고한 양반의 초상`이 전부다.
그러다 갑자기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1910년 한일합방까지의 역사가 지루하게 전개된다. 이어 3ㆍ1운동과 6ㆍ10만세, 815 해방 등의 독립운동의 역사가 민족주의적 반일정서를 바탕으로 다소 반복적으로 오버랩된다. 이런 한국의 근대사를 설명하는 기본 축은 서구문명을 재빨리 받아들인 일본이 영국, 프랑스 등 서양 제국주의를 흉내내 조선의 내정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하면서 마침내 조선을 강점하게 됐다는 논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조선이 망하게 된 것을 모두 서구 외세와 이에 결탁한 일본의 탓만이라고 돌릴 수 있을까. 17ㆍ8세기 실학사상과 상업활동에서 나타난 근대성을 향한 잠재된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민족의 운명을 노회한 사대부들에 저당잡힌채 백여년을 허송한 우리들에겐 책임이 없을까. 우리가 쓴 우리의 근대사에 외세와 일본이 없는 역사를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은 위로는 권력다툼과 세도정치, 아래로는 부정부패과 탐욕에 빠져 근대화를 위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점차 `야만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은 아닐까.
박지향 서울대교수가 이번에 내놓은 `일그러진 근대`는 민족주의 또는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우리의 근대화 과정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한다. 19세기 서양을 대표하는 영국이 당시의 한국과 일본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 지를 비교사적 관점에서 고찰한 이 책은 `영원히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이 왜 조선을 `문명퇴화의 본보기`로 간주하고, 심지어 `미개하고 우스꽝스러운 나라` `영원히 클 수 없는 어린아이의 나라`로 치부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조지 커즌(1859~1925), 버드 비숍(1831~1904) 등 두명의 영국출신 탐험가를 통해 이들이 한국과 일본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두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담고 있어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를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저자는 우선 우리가 근대 초입에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이유를 당시 조선에 대해 가장 동정적이었던 영국출신 언론인 프레더릭 매켄지의 입을 통해 “아무런 편견이 없는 관찰자라면 오늘날 한국이 독립을 상실한 것은 대체로 구왕조의 부패와 취약성에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말로 대신한다. 추사 김정희가 당파싸움에서 밀려 제주도에 유배돼 세한도를 치고 있을 때 조선은 이미 전국적으로 자행되는 관리들의 부패와 부정, 가렴주구, 생산력 수준을 넘는 가혹한 착취로 이미 왕조의 조종을 울리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일본의 신흥 무사계급처럼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열혈 개혁층이 수십년간에 걸친 대대적인 숙청으로 붕괴돼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도 조선의 불행을 더한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천왕옹립파들을 중심으로 1,00여년에 걸친 지방 할거시대를 끝장내고,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 유신이후 5년째에는 조선보다 한 세대나 앞서 최초의 철도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어 개항 10년째에는 영국ㆍ미국 등 서구 열강에게 배운 방식 그대로를 조선에 적용, 가장 먼저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깨운다. 그리고는 1894년, 1904년 잇따라 청나라와 러시아를 깨고 아시아의 유일무이한 `황색 문명국가`의 자리에 오른다.
서양인들은 이러한 일본의 모습을 하나의 경이로움으로 보았다. 그들은 일본이 영국을 `한번 해볼만한 상대`로 인식하고 독일과 러시아 등 후발 근대화 국가들과 친하게 되는 193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백인이 아니면서 백인이 되어가는 나라`로 열렬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세기말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거문도사건을 일으키며 적극적인 조선 경략에 나서기도 한 영국이 1902년 영ㆍ일 동맹이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아예 아시아의 경영을 일본에 맡기는 듯한 태도로 전환한 것도 영국 조야의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일본도 근대성의 유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듯하다. 당시의 세계 제1대국 영국이 아닌 `가장 후진적인 나라` 독일의 법제도를 받아들여 근대법을 완성한 것은 어쩌면 일본 안에 내재된 전근대성의 숨길 수 없는 발현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힘이 붙는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 등 근대화 선진국들보다는 독일과 러시아 등 전근대성을 온존시킨 후발국들을 따르려 했던 일본의 시도는 결국 2차대전의 비참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최근들어 정치개혁의 지체와 정보혁명의 수용과정에서의 잡음등으로 여전히 산업화이후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근대 초기의 왜곡되고 급조된 일본 특유의 근대화가 남긴 유산은 아닐까.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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