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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개인 고금리 과신·업계 불투명 판매가 '불나방 투자' 부채질

■ 회사채·CP 피해 왜 반복되나<br>투자자 보호 원칙 오락가락… 소송 걸어도 대부분 패소<br>투자금 30% 건지면 다행<br>"자기책임원칙 따지기 전에 행정·사법적 안전판 마련을"

LIG건설 기업어음(CP) 피해자들이 2011년 3월29일 서울 역삼동 푸르덴셜타워 앞에서 LIG그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울경제DB


"개인의 기업어음(CP), 회사채 투자 피해는 수십 년 된 문제지만 완전히 금지하면 기업의 긴급자금 조달이 막히니 정부도 난감합니다." (금융당국 관계자)

동양그룹 계열사의 자금난을 계기로 개인의 CP와 회사채 투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적 지식이 약한 개인이 고금리만 좇아 부실기업의 채권을 산 후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감행하는 묻지마 투자의 뒤에는 이를 부추기는 금융투자업계의 불완전판매 관행이 있다는 비판이 높다. 특히 최근 금융소비자 권익 강화 움직임에 따라 투자자의 집단소송이 증가하고 비로소 관련 규제도 초석을 다지고 있다.

다만 금융감독당국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기업의 마지막 돈줄인 개인투자자를 완전히 금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투자자 책임원칙을 주장하려면 불완전판매와 불공정거래를 엄벌하는 행정ㆍ사법적 기반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개인의 과신, 업계의 불투명이 빚은 불나방 투자=부실기업의 투기등급 CP와 회사채 투자는 피해사례가 잇따르는데도 줄지 않고 있다.

CP는 원칙적으로 신용상태가 양호한 기업이 단기자금 조달을 위해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무담보 어음이다. CP나 회사채는 기업의 재무구조와 업계 예측 등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므로 개인보다는 기관투자가에 적합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CP는 회사채보다 더욱 위험한 투자상품이다.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이사회를 소집해야 하는 등 갖가지 단계를 밟아야 하지만 CP는 이사회 의결이나 발행기업 등록, 유가증권신고서 제출 등과 같은 절차 없이 어음용지에 도장을 찍어 발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회사 재무상태를 보여주지 않은 채 거액을 투자 받는 것이다. 그러나 부실기업의 CP는 주로 은행·증권사를 통해 고금리 상품을 찾는 고액 자산가에게 팔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양그룹이다. 동양의 10월 위기설은 지난해부터 금융투자업계에서 꾸준하게 오르내렸고 근거도 10월24일부터 금융투자업법상의 판매규제 강화로 명확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는 아랑곳없이 동양증권을 통해 동양의 CP와 회사채를 사들였다. 16일 금융투자업계와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동양ㆍ동양레저ㆍ동양인터내셔널ㆍ동양시멘트ㆍ동양파이낸셜대부 등 동양그룹 5개사가 발행한 단기금융증권인 CP와 전자단기사채는 1조1,000억원어치에 이른다.

금융감독원은 이 가운데 개인들에게 판 CP는 5,000억원대에 달하며 동양에 관련된 개인투자자는 4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신용평가사가 B등급 이하로 발표한 투기등급이다.

법정관리 중인 STX팬오션도 직전까지 CP와 회사채가 팔려나갔다. 현재 6,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CP의 발행관행도 문제다. 동양은 주로 3개월 미만의 단기 CP를 발행했다. 3개월 미만의 CP는 증권신고서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반 CP보다 위험하다.

그러나 부실기업들이 단기 CP를 발행한 후 갚지 않고 다시 꿔서 갚는 차환발행(롤오버)을 이어가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일부 부실기업들은 단기 CP를 계속 롤오버하는데 이는 현금과 같은 유동성의 혜택을 보면서도 장기 CP에 적용하는 규제는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해당 기업이 어려워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수익 단기투자라는 점만 강조하면서 단골 고액자산가에게 팔고 나서 다른 증권사로 옮겨 고위임원을 지내는 사람을 보면 기가 찬다"고 꼬집었다.

◇오락가락 투자자 보호로 금융투자 자기책임 원칙훼손=개인투자자의 부실기업 CP와 회사채 투자는 대부분 원금손실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정황이 있고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대부분 패소하고 최대 투자금의 20~30%를 건지는 게 전부다.

그러나 최근 금융소비자 권익이 강화되는 여론 속에서 일부 투자자가 집단행동에 나서자 금융감독당국도 구두경고에 나서는 등 개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목소리 큰 고객을 달래기 위한 무분별한 보상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현재 개인투자자가 대법원까지 승소한 판례는 없다. 가장 진전된 소송은 LIG건설의 CP 투자 논란이다. 구자원 회장 등이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지만 2,000억원의 사기성 CP에 투자한 피해자가 제기한 형사배상명령신청은 각하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동안 CP와 회사채 개인투자자가 낸 소송은 주로 불완전판매에 대해 판매증권사 등에 낸 것이 대부분으로 최대 투자금의 20~30%를 보상 받는 선에서 그친다"면서 "앞으로 소비자 보호 여론이 강화되고 있으므로 금감원의 분쟁조정과 법원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소송이 적은 이유 중 하나는 소송 중간에 금융투자사가 투자원금의 몇 배를 고객에게 보상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잘못된 관행"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불완전판매에 대한 확실한 제재를 전제로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확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금융투자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과 영국은 불완전판매에 대해 확실한 배상과 제재체계가 마련돼 있다"면서 "불완전판매에 대한 시스템이 잡힌 후에 투자에 관한 자기책임 원칙을 물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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