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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금융산업 독주 막자] 국내 금융인프라 구축 자금흐름 왜곡 막아야
입력2003-12-03 00:00:00
수정
2003.12.03 00:00:00
정승량 기자
외국계 자본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우려하는 것은 자칫 시장 위험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외신인도 제고와 금융산업 전반적인 서비스개선 등 외국자본의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수 없지만 국민경제가 나아갈 방향과 외국자본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경우 돈의 흐름이 왜곡돼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이 최근 금융권을 순수 국내금융회사와 외국계, 내ㆍ외국 합작회사 등 삼각구도로 형성해 나갈 것을 촉구한 것도 국내자본이 최소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재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두가지다. 첫째 외국인 지분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정부보유 은행지분처리과정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두번째는 뾰족한 대응방안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가 나서기도 어렵다. 월가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외교적 압력으로 비춰질 소지도 있다. 국제자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국내금융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진 셈이다. 적과 화친을 맺으면서도 들키지 않고 성을 쌓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국내외 여건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 외환위기 직후와 비교할 때 국내 자본도 상대적으로 비축된 상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자본의 논리에 반대하는 세력도 늘어나고 있다. 군량미가 쌓이고 우군이 늘어난 것이다. 무엇보다 외환보유액이 1,500달러를 넘어섰다는 점이 사정이 좋아졌음을 의미한다. 기업과 금융회사들도 부실 금융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여유를 갖기에 이르렀다. 전경련은 국내 산업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내세우며 금융회사 인수의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월가 자본의 이해관계가 일방적으로 통용되는 국제 금융계의 질서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무디스와 S&P 등 신용평가회사들이 최근 독일의 주요 기업과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자 독일은 최근 `앵글로 색슨(Anglo-Saxon)`계열이 아닌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신용평가회사를 공동설립할 것을 주창하고 나섰다.
지노 다다오(千野忠男)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역내국가들의 외국보유액을 활용한 아시아역내채권투자 활성화를 적극 주창하고 있다. 무려 1조2,000억원달러에 이르는 한국과 중국, 일본,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등이 보유한 외환을 미국 국채를 사는데 쏟아부을 게 아니라 역내 자본시장 육성과 빈부격차해소에 나서자는 것이 골자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3개국은 이미 공동 신용평가기관 및 보증기관설립 등을 포함한 방안을 실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역내 채권에 대한 공동투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추진 사실 자체만으로도 투기성 외국계자본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기가 의외로 앞당겨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제통화기금 등 주요 국제기구들이 아시아지역의 과도한 외환보유고가 미 달러화 하락시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해서 나설 처지는 못된다는 것이다. 자칫 외국인 투자자는 물론 상대국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순차적인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선 국내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게 정부의 당면목표다. 재정경제부 이석준 증권제도과장은 “외국인시가총액이 40%라고 하지만 경영권을 감안해 움직이지 않는 대주주 지분을 감안할 경우 실제로 거래되는 외국인시가총액은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국내 금융기관의 주식투자확대를 촉구했다.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우리도 캘리포니아연금처럼 연금을 키워 주식에도 투자하고 기업에도 투자해야 한다”며 은행과 국민연금의 투자 확대를 유도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정부가 시행할 규제완화는 업계에서 주장하는 산업자본에 대한 전면 허용보다는 은행과 기금의 투자확대라는 수순을 먼저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외국인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국내 투자 기반을 조성하면서 내국인 역차별 문제를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불가사리처럼 들어오는 외국계 자본에 우리의 시스템과 전략이 맞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승량기자 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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