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생산단가·자연 훼손등 단점 보완 '차세대 풍력발전' 등장<br>기둥 하나에 여러개 터빈 달아 공간 효율성 높이고 비용 줄여<br>4.6㎞상공 연처럼 띄운 풍차·고속도 바람 이용한 장치도 개발
| 미국인 발명가 더그 셀샘이 개발한 35㎾급 25중-로터 풍력 터빈 프로토 타입. 길게 뻗은 프레임의 끝에는 풍선이 달려 있다. |
|
| 미국 스카이윈드파워사는 마치 연을 날리듯 로터를 하늘로 띄워 발전을 하는 풍력발전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
|
| 영국 건축회사 쳇우드어소시에이츠사가 러시아의 라도가 호수 상공에 설치할 예정인 공중 풍력댐. |
|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하면서 풍력발전이 초고유가 시대를 타개할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기존 풍력발전 시스템들의 경우 독자적으로 상업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대형 터빈 및 송전탑 설치를 위해 자연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하나의 축에 다수의 로터를 채용한 다중-로터 터빈, 지상 4.6㎞ 상공에 띄운 연(鳶)풍차 등 현존 시스템의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차세대 풍력발전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에너지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고유가에 급부상한 바람에너지
국제유가가 최근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섰다. 이 추세대로라면 수년 내 200달러를 돌파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유가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전세계는 지금 초비상 사태에 빠졌다. 치솟는 유가로 경제불안이 가중되고 물가상승, 성장둔화, 국제수지 악화 등 매머드급 악재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유가 기조를 진정시킬 궁극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 즉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중 현재의 위기를 해소할 가장 효과적 자원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풍력을 1순위로 꼽는다. 풍력은 태양에너지를 제외한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청정에너지이며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대체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풍력에너지의 가격은 터빈의 효율상승 덕분에 20년 전보다 85%나 떨어졌다.
문제는 이처럼 좋기만 할 것 같은 풍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사실 풍력은 아직 전력생산 단가가 원자력 등에 비해 높아 정부 지원을 배제한 독자적인 상업성 확보가 어렵다. 또한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 터빈의 대형화 및 대규모 풍력단지 조성이 불가피한데 대형 터빈과 송전탑 설치 과정에서 부득이 계곡이나 해안의 자연을 훼손해야 한다. 풍력발전 비판론자들이 풍력을 환경파괴를 담보로 한 값비싼 에너지라고 폄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풍력시스템의 태생적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 효율성과 경제성은 극대화하고 환경훼손은 최소화한 차세대 모델들이 등장해 에너지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일당백의 발전량, 다중-로터
요즘 건설되는 대규모 풍력발전단지는 면적이 웬만한 소도시와 견줄 만하다. 터빈 기둥들의 길이만 30층 건물 높이에 이르며 그 끝에는 747 점보제트기의 날개만한 초대형 로터(rotor)가 달려 있다. 이들을 통해 막대한 전력이 생산되지만 제작이나 운반ㆍ설치가 까다롭고 부지 확보 등에 들어가는 투자비도 만만치 않다.
최근 미국인 발명가 더그 셀샘은 이처럼 거대화되고 있는 풍력 터빈의 문제점을 극복할 새로운 개념의 발전 시스템을 개발했다. 기둥 하나에 로터 하나로 이뤄진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탈피, 하나의 축에 다수의 소형 로터를 채용한 ‘다중-로터 터빈’이 바로 그것. 축에 달린 로터가 많을수록 좀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전력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의 구현을 위해 그는 두 가지 물리학적 난제를 해결해야 했다. 최적의 효율을 얻으려면 모든 로터가 바람을 한껏 받을 수 있도록 축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과 기존 풍차에 달린 로터의 10분의1 크기로 동일한 양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9년간의 연구 끝에 그가 찾아낸 해법은 고강도 탄소섬유로 만든 유연한 프레임에 수십개의 로터를 적정 간격으로 장착하고 바람에 따라 이 프레임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동식 터빈이다.
이렇게 탄생한 셀샘의 35㎾급 25중-로터 풍력 터빈 시제품은 중심 기둥과 로터를 매단 프레임을 기역(ㄱ)자 형태로 연결시켜 바람의 방향에 따라 프레임이 360도 회전한다. 언제든 각 로터들이 최대의 바람을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프레임의 끝에는 풍선을 달아 로터가 항상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도록 했다. 이 프레임의 모습이 마치 수풀을 헤치고 나가는 뱀을 닮았다고 해서 ‘하늘의 뱀(Sky Serpent)’으로 명명됐다.
셀샘은 “25중-로터는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언젠가는 프레임의 길이가 수㎞에 달하는 다중-로터를 하늘에 띄워 장관을 연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늘을 나는 제트기류 풍차
셀샘의 다중-로터가 하늘의 뱀이라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스카이윈드파워사의 풍력발전 시스템은 ‘하늘의 연(鳶)’이라고 할 만하다.
현재 이 회사는 약 11m 길이의 로터 4개를 H형 초경량 합금 프레임에 부착한 뒤 줄을 이용해 하늘로 날리는 일명 ‘하늘을 나는 풍차’를 개발하고 있다. 연을 날리듯 로터를 공중에 띄워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발상이다.
로터가 위치할 높이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백두산의 1.6배에 달하는 지상 4.6㎞ 상공이다. 굳이 이 높이를 목표점으로 선택한 것은 이곳에 흐르는 초강력 제트기류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또한 자체 부양 장치가 없는 로터를 순수한 바람의 힘만으로 공중에 떠 있게 하려면 제트기류 속에 넣어놓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점도 감안됐다.
스카이윈드파워가 이 기상천외한 시스템을 구상하게 된 것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의 양이 많고 강도 또한 세다는 점에 기인한다. 실제 스카이윈드파워사의 연구에 따르면 제트기류 속의 로터는 동일한 크기의 지상 로터에 비해 약 2배가량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오직 전력 송신용 전도체를 내장한 줄 하나로 지상과 연결돼 있는 만큼 환경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이 만화 같은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추락방지 장치와 회수 시스템, 줄의 안정성 유지, 항공기 등과의 충돌방지 시스템 등 결코 녹록지 않은 기술적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이 회사의 데이비드 셰퍼드 사장은 매우 낙관적이다.
그는 “현재 H형 프레임과 로터의 재질 및 구조, 상업성, 안전성 등을 전방위적으로 연구 중에 있다”며 “기술 개발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제트기류 풍차의 출범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최종 목표는 518㎢의 하늘 공간에 수백개의 로터를 띄워 최대 500만명 인구의 도시가 사용할 전력을 생산ㆍ공급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기생 풍력발전기
다중-로터처럼 혁신적 메커니즘도, 제트기류 로터처럼 웅장한 스케일도 없지만 단순한(?) 발상의 전환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풍력발전 시스템 모델도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에 재학 중인 조라는 학생이 제안한 ‘고속도로 기생 풍력발전기’가 그 주인공.
명칭에서 느껴지듯 이 시스템은 자연 상태의 바람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차량들이 만들어낸 인공의 바람을 이용해 로터를 돌린다. 그는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사람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의 센 바람을 일으킨다는 점에 착안, 이 장치를 고안했다.
도로가에서 먼지나 일으키고 사라졌던 자동차 바람을 인간에게 유익한 전기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기발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조는 그렇게 믿는다. 그는 현재 2개의 나선형 회전날개를 장착한 기생 풍력발전기를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고속도로에 설치했는데 이를 통해 시간당 평균 1.92㎿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는 “이곳을 통과하는 차량의 평균속도는 시속 112㎞”라면서 “이로 인해 도로주변에 시속 16㎞의 바람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속 16㎞의 바람이 발생하는 도로라면 어디에서든 경제성을 유지하며 기생 풍력발전기를 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영국 런던의 건축회사인 쳇우드어소시에이츠사는 거대한 돛을 공중에 띄워 주변의 바람을 한곳으로 모은 뒤 로터를 돌리는 ‘풍력 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로터에 직접 부딪치는 바람보다 비켜나가는 바람이 더 많은 기존 풍력발전시스템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
이 회사는 이미 500만달러의 민간자금을 투자받아 고강도 케블라 섬유로 넓이 1,580㎡, 폭 75m의 삼각돛 제작에 돌입한 상태다. 제작이 완료되면 러시아 발틱해 인근의 라도가 호수 25m 상공에 설치돼 안정성과 내구성을 입증하게 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