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해외법인장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모두 이겨내왔으며 현대차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 정 회장은 위기 때마다 특유의 뚝심 경영으로 극복해왔다. 1999년 정 회장은 미국에서 '10년 10만마일 보증'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제너럴모터스(GM) 같은 일부 글로벌 업체가 러시아에서 철수함에도 정반대의 전략을 취해 점유율 상승을 이끌어내고 있다. 러시아의 상반기 판매는 7만9,444대로 전년 대비 11.3% 감소했지만 점유율은 2.9%포인트 오른 10.2%를 달성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러시아 경제가 좋아지면 '의리경영'을 한 보답을 분명히 받을 것"이라며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어려운 오너 경영의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뿐만이 아니다.
제조업 중심의 우리 간판 기업들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는 것은 신속하고 과감한 오너들의 의사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재계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달 있었던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메르스 관련 대국민 사과도 그룹 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밀어붙여 사태 조기수습에 큰 역할을 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신속하게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삼성서울병원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만으로도 여론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며 "오너 일가의 결단 없이는 어려웠던 일"이라고 전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제주신라호텔 영업정지 건은 오너 경영이 갖는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의 장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재계 관계자는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수익을 생각해야 하고 만에 하나 영업정지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가능성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며 "오너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질 수 있기 때문에 위기 시 초동대응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구본무 LG 회장이 최근 계열사 사장들을 향해 시장 선도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신동빈 롯데 회장이나 허창수 GS 회장, 박용만 두산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이 일제히 위기론과 이에 대한 타파를 외치고 있는 것은 그룹 내 총수들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오일 쇼크에서부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이겨내는 데는 정부 지원과 국민의 성원, 임직원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위기 극복에는 오너들의 노력이 주효했다.
업계에서는 현 SK의 상황이 위기 때 오너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 인수는 다른 그룹이 거부한 것을 최태원 회장이 통 크게 결심해 이뤄진 것"이라며 "결과론이지만 SK하이닉스가 없었다면 그룹의 위기가 왔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역설적이게도 SK는 최 회장 부재 이후 KT렌탈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데 이어 면세점 선정에서도 탈락했다. 제대로 된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킨 사례가 없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SK의 예는 위기 때 왜 오너 경영이 중요한지를 보여준다"며 "위기 때일수록 오너 경영이 빛을 발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