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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주식투자 서둘러야

그동안 여유자금을 안정적인 운용에만 집중해오던 정부가 최근 들어 국내외의 수익성 높은 자산을 겨냥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와 부동산투자를 전면 허용하는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더니, 외환보유액 중 일부를 수익성이 높은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투자공사 설립을 추진하는 등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주식투자와 부동산투자 전면 허용 조항을 삭제하기로 의결함에 따라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는 사실상 무산됐다. 해외자산에 대한 투자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막상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국내 우량기업에 대한 투자는 외면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지난 88년 출범한 이래 급속하게 성장해왔으며 앞으로도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동안 자금운용을 채권투자와 같은 안정적인 운용에만 집중함으로써 안전자산인 채권가격은 올라가고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가격은 하락하는 현상이 지속돼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경우 금융자산 중 채권 비중이 92%에 달하는 반면 주식투자 비중은 7%에 불과하다. 미국 연기금(65%)이나 일본 후생연금(40%)에 비하면 매우 기형적인 자산배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가 강제로 자금을 회수해 안전자산에만 동원하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금융시장의 자산왜곡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금의 채권집중 현상은 연기금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운용에도 배치된다. 연기금은 그동안의 저부담–고급여 체제와 인구구조의 고령화로 인해 성숙기에는 적자가 발생할 것이 예상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전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투자에만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은 그만큼 금리상승 위험에 노출된다. 더욱이 향후 운용계획안에 따르면 보다 높은 수익성을 창출하기 위해 BBB급 회사채로 투자범위를 확대함으로써 디폴트 리스크도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나 포스코와 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우량기업을 중심으로 주식편입 비중을 확대해 장기 보유한다면 국가 전체적인 금융자산 왜곡현상을 해소하고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통해 기금의 효율적 운용을 가능하게 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실제로 국내의 대표적인 5개 우량주를 지난 5년간 보유했다면 올릴 수 있는 수익률이 무려 31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연기금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으레 연기금의 단기 운용 성과에 대한 질책이 쏟아지는데 이와 같은 상황은 주식의 장기투자원칙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또 연기금을 주가침체기에 지수방어용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증시에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시가총액 기준으로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어서 일본이나 타이완에 비해 매우 높다. 특히 대표 기업들의 경우 이미 50~60%를 넘어서 사실상 외국기업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 기업들의 경영성과가 주가상승과 배당을 통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당연히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 확대가 절실하다. 연기금의 주식 비중 확대는 우리 주식시장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절대저평가 현상을 해소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미국 주식시장은 장기간에 걸쳐 상승세를 지속해온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십수년간 종합주가지수가 500포인트에서 1,100포인트 사이를 움직이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절대저평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의 급등락과 주가상승기를 이용한 대주주들의 공급물량 집중 등이 이러한 장기 박스권 장세의 주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멍에를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연기금이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자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결국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는 ▲금융자산의 분배 ▲기금의 건전성 ▲국부유출 및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국가경제 전반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더 이상 미룰 사안이 아니다. <정태석 교보증권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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