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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기 맞아 재조명되는 꼽추화가 손상기

`육중한 철재에 몸을 담고 목적없는 여행길에 허탈한심정으로 가고 있는 인간고/ 그러나! /내겐 크레용 팬과 스케치북이 있어 외롭거나슬프지 않다' 지난 88년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꼽추 화가' 손상기. 삶의 무게가 버거워지면 그는 이런 글로 예술에 대한 각오를 다지곤 했다. 그의 10주기를 맞아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이 요절화가의 생애와 예술을 재조명하는 회고전이 강남구 청담동샘터화랑(☏ 514-5122)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자작시에서 제목을 따온 이 `자라지 않는 나무'展에는 3백호부터 4호크기의 유화 40점, 드로잉 60여점 등 1백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80년대 화단에서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렸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때 높은 나무에서 떨어져 불구의 몸이 됐다. 그러나 뜻하지 않았던 신체장애도, 지독했던 가난도그의 예술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불행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 인간승리의 한 전형을 이뤄냈다. 불현듯 밀려오는 삶의 번민과 고통을 물감으로 씻어내려는듯 눈만 뜨면 화폭에매달렸던 손상기. 이때문에 살아생전 그는 `다작의 작가'였다. 개인전때마다 출품작이 거의 매진되었는데도 오늘날 유족이 소유하고 있는 작품수가 4백여점에 이른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채기 난 꿈을 실현시켜보려는 욕망에서다. 표현할수 없는 것의 상실, 이로 말미암은 암흑속에서 고독과 오한을 느끼며 아픔에 신음하는 내면의 언어를 추려내어 가혹하고 엄격한 훈련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또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신체적 굴레'에 대해 쓴 글을 보면 그의 초인적인 정신력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진다. `눈, 이, 호흡, 배, 변비, 다리, 신경통,가슴, 등,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제일 부럽다. 어떻게 아프다는 말을 왜 하지 않는가. 눈이 핏발 제거수술을 요하고 이는 충치라. 호흡은 무거운 일을 할 수가 없고왼쪽다리 무릎아래로 신경이 약하며 다리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찌리찌리'하다. 명산의 바위처럼 위용있게 돌출된 가슴뼈. 외봉낙타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미치는키. 불쌍타.가엾다. 그가' 전남 여수 출생인 손씨는 국전, 구상전등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83년평론가들이 뽑은 `문제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짧은 생을 예감이라도 했던듯 그는81년 이후 해마다 개인전을 열만큼 놀라운 창작의욕을 보였다. `工作都市' `자라지않는 나무' `시들지 않는 꽃'등의 연작들은 자신의 슬픔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고통받는 삶을 처절하리만큼 아프게 그려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무수한 데생과정을 거친 그의 유화는 어두우면서도 신선하고 원초적인 색조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며 보는 이를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우수로 이끌어 인기가 높았다. 원광대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고교시절까지 그는 문학소년이었다. 여수상고 문예반에 들어 글을 썼고 백일장에서 여러번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를 기념해 그의 글과 그림을 모은 화집 `자라지 않는 나무'도 발간됐다. 이 화집속에는 신체불구의 상처받은 한 영혼이 자기 내면으로만 치닫던 폐쇄된예술세계에서 과감히 껍질을 깨고 보다 큰 현실에 눈뜨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들이 실려있어 감동을 준다. 전시회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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