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의 신용과 농업경제사업 부문을 떼어내는 이른바 신ㆍ경 분리를 추진하려면 7조6,000억원대의 자금과 1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연구용역 결과는 용역자금을 댄 농협의 입맛에 맞게 나온 결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반대논리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금융연구원의 용역 결과가 오는 11월께 나오면 두 용역물을 토대로 정부가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16일 농림부에 제출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용역 결과는 그동안 농협이 주장해온 대로 농협을 분리할 경우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현 체제를 유지하자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다. 용역안은 분리 조건으로 총 7조6,816억원의 자기자본 확충이 선행돼야 하며 이익잉여금 적립 등을 확충하려면 15년이 소요되는데다 증자 등을 통한 자본조달은 한계도 있는 만큼 정부에서 나서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자산분할 때 신용사업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는 만큼 BIS 비율 10%를 맞추려면 3조3,077억원이 필요하고 농업ㆍ축산 경제사업의 자립에 필요한 추가 자본은 4조3,739억원으로 추산된다고 자본확충의 근거를 제시했다. 또 용역안은 신ㆍ경 분리가 단기적으로는 실익이 없고 농업ㆍ축산 경제사업의 위축 등 부작용이 큰 만큼 은행이나 공제 등 신용사업의 재원을 활용해 경제사업을 활성화한 뒤 신ㆍ경 분리를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이 연구 결과는 뚜렷한 근거 없이 신ㆍ경 분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농협중앙회 측의 입장만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금융정책팀장은 “외부 용역 결과가 농협 측의 최종안이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다양한 신ㆍ경 분리 방법 중 비용이 많이 드는 안을 제시한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농림부도 연간 1,500억원대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4조원의 추가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는 경제사업 자본확충 방안 등에 대해 접근방식이 틀렸다는 의견을 농협에 전달한 바 있다. 농협의 신ㆍ경 분리는 농협이 종합금융그룹화하기 앞서 해결해야 할 전제조건이다. 금융계에서는 그동안 “농협이 지금까지 다른 민영 금융사들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영업을 해왔다”며 “신ㆍ경 분리와 일부 금융사업 부문의 분사 등 조직체계를 바꿔 은행ㆍ보험사들과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은 농협 신용사업의 종합금융그룹화에 앞서 신ㆍ경 분리 실시를 주문했고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에 노골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던 정대근 중앙회장은 현대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있는 상태다. 농협이 주문한 연구용역과는 별도로 농림부는 금융연구원에 농협 신ㆍ경 분리에 관한 용역을 줬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금융정책팀장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마련된 농협 측의 신ㆍ경분리안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협의 신ㆍ경 분리는 농협 측이 요구하는 예산확보, 한미 FTA 협상, 내년 대선 등을 고려할 경우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농협의 경제사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무작정 농협을 분리하면 농민과 농업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농협의 신용사업까지도 위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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