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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 전체 자금순환을 보면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예금보다 연금·펀드로 유입되는 여유자금이 매년 두 배 이상이다. 잔액으로도 기관투자가 운용자산과 예금자산 모두 1,300조원 내외로 이제 큰 차이가 없다. 앞으로 금융의 역할이 고령화 대비 노후소득 안정화나 저성장 극복을 위한 모험투자에 맞춰질수록 자산 운용을 책임진 자산운용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국내자산만으론 고수익 내기 힘들어
이러한 변화기에 자산운용업이 성공하려면 국가적 전략부터 잘 짜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은행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대업무는 속성상 내수모델이다. 근접고객을 대상으로 한 관계금융이 은행업의 본질이다. BOA나 JP모건 같은 글로벌 은행도 고유의 은행업은 미국 내 비즈니스가 대부분이다. 자산운용업은 이와 전혀 다르다. 처음부터 글로벌 모델로 키워야 한다. 외환위기 때 생겨난 국내 자산운용시장이 얼마 안 돼 해외펀드 열풍으로 이어졌던 것도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공간을 뛰어넘은 자산운용업의 글로벌 속성을 잘 보여준다. 하물며 최고속 고령화로 은퇴자산이 급격히 축적되는 지금, 국내자산·국내시장만으로 자산운용업이 노후소득 안정화를 이룰 수는 없다.
국내 자산운용은 국내자산 편중(홈 바이어스)이 심각하다. 분산투자가 필요 없는 고금리시대를 막 지나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회사채 금리가 1%대를 노크했고 자산운용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이 이어진다면 이는 운용능력과 운용전략의 위기로 봐야 한다. 저성장으로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국내 자산에 아무리 분산투자를 해봤자 글로벌 관점에서는 저수익 자산에 집중투자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국제화가 자산운용의 미래를 담보하는 필요조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바람직한 국제화는 포트폴리오의 국제화와 산업의 국제화가 균형된 상태다. 이런 점에서 국내 자산운용시장의 국제화 지연은 두 가지 불균형과 관련 있다. 하나는 포트폴리오 국제화의 개인과 기관 간의 불균형이다. 해외투자 세제 차익 해소 등 개인 자산의 포트폴리오 왜곡 요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포트폴리오 국제화와 산업 국제화 간 불균형이다. 국부펀드나 국민연금 같은 글로벌 기관투자가는 그 자체가 국제화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자산운용산업의 국제화를 견인하는 소중한 국가역량임에도 그 역할이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단의 환경변화가 없다면 불균형이 심화되며 국내 금융의 경쟁력 저하는 물론, 국부펀드나 대형 연기금의 글로벌 포지셔닝 제고에도 제약요인이 될 것이다.
정부가 펀드·운용사 글로벌화 촉진을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국내에서 평판이 높은 운용회사의 국제화를 국가자산이 견인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다만 연기금의 수탁자책무가 훼손되지 않도록 운용부담이 덜한 시장수익률 추구(패시브) 자산부터 점진적으로 연계를 추진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대체투자는 국내 자산운용사와 국가자산이 공동투자를 통해 투자위험을 관리하고 해외 역량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아울러 공제회·조합·재단 등 중소기금의 해외투자를 국가적으로 조직화해 투자효율을 높이는 투자풀 방안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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