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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새 패러다임을 찾아서] 15. 태국

태국은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원지로서 금융·기업 구조조정을「그들만의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태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관광수입만 연간 100억달러에 달하기 때문에「구조조정을 통한 외자유치만이 살길이다」식의 절박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구조조정을 하되「태국식으로 태국의 일정에 맞게 한다」는 것이 태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 원칙이다. 태국의 자본시장도 이같은 원칙에 따라 서서히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태국증시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기업 구조조정의 속도를 읽어내고 이에 맞게 투자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당초 태국정부는 외환위기 이전인 96넌 4월 종합적인 자본시장개발계획을 발표했었다. 우선 투자자를 위해 기업들은 단순, 명확한 공시를 내도록 제도화했다. 또 주요 수출관련 우량기업의 상장을 유도, 시장규모를 확대했다. 10년내에 증권산업에 관한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 시장을 국제화하고 공매도, 대주, 파생상품등 시장개발을 통해 증시발전을 도모한다는 중장기 플랜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97년 외환위기가 태국증시를 강타한다. 태국 증권거래소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3월 급격한 가격변동시 거래를 중단하는 써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 제도를 도입, 시장위험을 최소화 하는 조치를 단행했고 98년 5월에는 중소기업 전용시장인 SME시장의 설립계획을 발표했다. 태국 증시는 외환위기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태국의 4대 증권사의 하나인 티스코 증권의 수타스 이사는『태국 증시는 이미 바닥을 찍었다』며『올해는 GDP성장률이 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펀더맨탈이 호전되고 있기 때문에 주가지수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참조 국내에서도 조흥증권을 인수해 잘 알려진 KGI증권의 리서치 담당인 마리스 이사는『올해 적정 주가지수는 635포인트 정도로 예상된다』며『자동차 업종처럼 저평가된 종목이 투자유망하다』고 말했다. 태국 자본시장은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과 같은 궤도를 달리고 있다. 전형적인 예가 은행주다. 외환위기 직후 태국의 은행주들은 폭락세를 나타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금융구조조정의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태국의 금융·기업구조조정은 FRA(FINANCIAL SECTOR RESTRUCTURING AUTHORITY)와 CDRAC(CORPORATE DEBT RESTRUCTURING ADVISORY COMMITTEE)에서 나눠 맡고 있다. FRA는 외환위기 이후 폐쇄된 56개 금융기관의 자산을 이관받아 경매를 통해 매각하고 있다. FRA는 올초까지 인수한 자산 전체를 매각할 계획이다. 매각된 자산의 평균가격은 장부가격의 25% 수준으로 경매절차가 진행될 수록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매각자산의 40% 정도는 외국인에게 낙찰되고 있는데, 특정인이나 그룹에 특혜를 주지 않고 내외국인을 차별하지 않으며 파산기업이 자산을 할인된 가격으로 되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매각 원칙으로 하고 있다. 폐쇄되지 않고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은 각 금융기관이 별도의 자회사인 자산관리회사(AMC:ASSET MANAGEMENT COMPANY)를 설립, 부실자산 정리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모회사인 금융기관은 일정한 가격에 부실자산을 AMC에 이전하고 AMC는 이전받은 부실자산을 매각하는 것이다. AMC를 통한 부실자산 정리는 대규모의 대손상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채무재조정을 통한 부실자산 처리를 선호하고 있다. 대출원금 탕감, 출자전환, 담보처리를 통한 상계 등의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태국의 사이암 상업은행은 지난해 13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는등 대부분의 은행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부실자산을 AMC등으로 넘기면서 대손상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단 대손발생으로 은행이 대규모 적자를 냈더라도 올해부터는 클린뱅크로서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태국 정부는 국내 은행을 외국금융기관에 적극적으로 매각하고 있다. 나콘손은행과 라다나신은행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유나이티드오버시즈은행에 각각 매각됐다. 방콕 메트로폴리탄은행은 시티뱅크에, 타이다노 은행은 싱가포르개발은행에 각각 인수됐다. 샴시티뱅크는 싱가포르개발은행 및 뉴브릿지캐피탈과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 태국의 은행권은 외국 금융기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구조조정 기구인 CDRAC은 우리나라의 기업구조조정협약과 같은「태국 기업구조조정 계획(FRAMEWORK FOR CORPORATE DEBT RESTRUCUTURING IN THAILAND)」에 의거해 진행되고 있다. 이 계획은 채권자, 채무자의 손실을 최소화시키고 기업도산을 가급적 방지하려는 목적하에 제정된 것으로 19개 기본원칙 및 세부이행 사항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태국의 기업구조조정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기업들의 대규모 대출을 상각시킬 만큼 은행들의 자본금이 충분하지 않다. 둘째 구조조정의 합의가 도출되기 위해서는 모든 채권자의 승인을 받아야하는데 이를 얻어내기가 쉽지않다. 셋째 체불임금으로 인해 채권자의 지위를 가진 종업원과 고용주간의 합의 도출이 어렵다. 넷째 파산법규 체제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조장하는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현지에 진출한 국내 모금융기관은 채무구조조정에 합의해 놓고도 기업주가 최종 이행계획서에 싸인을 하지 않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경우도 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도 태국 법원은 양자간의 합의를 중요시해 재판일정을 무한정 늘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태국의 구조조정이 이처럼 느린 것은 태국정부가 외환위기와 그 극복에 대해 독특한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해 식량 자급이 가능하고 농산물과 수산물을 해외에 수출하기도 한다. 외부의 도움없이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과 관광수입만으로도 충분히 견딜만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태국의 푸미폰 국왕은 외환위기 당시『도시에서 실직한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라』는 호소를 하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왔어도 식량, 에너지등을 자급할 수 있으므로 서둘러 구조조정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또 외환위기의 책임에 대해서도 독특한 논리를 편다. 태국의 외환위기가 기본적으로 기업의 방만한 외화차입에서 발생된 것이지만 제조기업들 대부분이 외국기업의 자회사이므로 부채문제도 자국의 문제라기보다는 해당 국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외국기업아니면 화교들이 소유한 기업에 태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으로 태국의 정부관료들은 구조조정에 느긋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김성수 기자S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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