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바위의자를 걸터 앉아
소나무로 둘러싸인웅장한 만장봉
정상에 이르니 하차 후 40분이 지난 10:50분. 공터에 멋없이 3단 기단 위 화강암석에 ``龍華山``이라고 표지석이 서 있다. 세운지 얼마 된 것 같지 않다. 지네와 뱀이 서로 싸우다 이긴 쪽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다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있단다.
아기자기한 암릉길, 빙판 북사면 길이 걸림돌
2-3년 전부터 사람이 적은 곳을 찾던 등산매니아들이 개발해 이제는 안내 산악회가 자주 찾는 산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정상 표지석 외에는 이정표가 전혀 없어 장님 문고리 잡는 격이다. 지도를 봐도 누가 얘기 안해 주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길이 조금이라도 헷갈린다 싶으면 산악회 리본들이 즐비하게 펄럭인다.
삼악산에서 보는 전망만은 못하지만 북쪽으로 파로호가 보인다고 했는데 너무 뒤쳐지는 가 싶어 파로호에 눈도장 찍을 겨를도 없이 정상석에 한컷 누르고 다시 뒤로 돌아나와 왼쪽 허리로 내려섰다. 한국전쟁시 수력 발전 때문에 욕심이 나 서로가 꼭 뺏고 싶었던 파로호. 전투가 치열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지나온 곳을 뒤돌아보니 ``층계바위``라는 눈에 띄는 바위가 층층히 큰 암반에 얹혀 있다.
암반에 얹혀있는 층계바위
갖가지 이름의 기암 괴석이 많은 산이다. 득남바위, 주전자 바위, 마귀할미바위, 작은 비선대, 젖꼭지바위, 광바위, 바둑바위. 그러나 알려줘야만 쉽게 알 수 있다. 이 기괴한 바위들은 안개, 구름, 계곡의 맑은 물과 함께 용화산의 특징이란다.
암릉과 북사면길을 번갈아 지나간다. 북사면 길은 빙판이 많아 아이젠을 껴야하고 바위가 나오면 벗어야한다. 사면이나 바위를 지나다 보면 떨어지면 즉석에서 황천행이 될 낭떠러지가 많다. 그러니 다리에 군기가 잔뜩 들어간다. 그러기를 첫 봉우리인 삼각점 (858m;11:40)을 지나 고탄령(?)까지 계속되어 올망졸망한 암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났을 것이다. 아마도 고탄령을 지나면서부터는 일반 숲속 능선의 낙엽 쌓인 오솔길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봄이면 신갈 숲 그늘에서 분홍 진달래
낙엽은 거의 신갈나무 잎이다. 푹신푹신하다. 지나는 길 가에는 진달래 관목이 계속 있어 봄에 다시 찾아 오면 참나무 그늘에서 청정 산소 마시며 원없이 분홍 진달래 구경하며 즐길 것 같다. 간간이 구색을 맞춰주는 소나무 군락지. 대부분이 아름들이 금강송 형제들같다. 마치 공생이라도 하듯 바위에 붙어있는 꼬불꼬불한 소나무와는 판이하다. 그래서 자생하는 송이버섯의 향기와 품질이 좋아 비가 오고난 날이면 도처의 나물꾼들이 들어 온단다. 산삼도 많아 전국의 심마니들의 경연장이 되곤 한다니 사람 때가 아직 덜 탔다는 얘기일 것이다.
넓은 공터가 있는 봉우리다. (12:45) 사방이 조망하기는 좋은데 부연하다. 바람과 함께 눈이라도 올 듯 하늘이 찌푸둥하다. 한 두어 마리 까마귀가 계속 울어대 매우 불길하다. 사고라도 예고하는 듯해서 말이다. 북동쪽 산아래로 논과 촌락이 옹기종기 발달돼 있는 게 평화스러워 보인다. 그림 같이 자리 잡은 간동면 간척리 일대의 분지형 산곡평야지대. 춘천에서 양구가는 최단코스의 한 복판인 셈이다.
북쪽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 일대의 분지형 산곡평야지역
3명이 거의 후미로 쳐져 식사를
우리는 3명이서 거의 후미로 가고 있는 중이다. 한 분은 몸이 아파 안 올려다 친구하고 왔다며 둘은 앞서 갔단다. 다른 한 분은 지난 주말 비가 오는 바람에 쉬었더니 표시가 난단다. 나도 마찬가지다. 빙판길에 힘이 들었다는 것은 양 무릎 조인트에서 신호를 보낸다. 한번은 힘든 절벽 타고 한번은 밧줄을 잡고 내려와 오르락 내리락하며 헬리포트에 이르렀다. 여기서 식사하고 배후령을 통과 오봉산을 향하기로 했다. 날씨가 좋은 것 같아 아이젠을 버스에 놓고 온 바람에 조심조심 걸어 왔다는 한 아주머니가 올라 온다. 우리는 오면서 벗었다 신었다를 스무 번 정도는 한 것 같은데… 발 아래로 양구에서 오는 46번 국도가 뱀이 기어오르는 것 마냥 꼬불꼬불 허옇게 오봉산과의 경계를 이루는 배후령(600m) 정상까지 올라온다.
배후령 주차장(오봉산수 식당)에 이르니 2시20분. 20분 일찍 시작한 것을 감안해도 3시 기준 20분 일찍 도착한 셈이다. 후미지만 컷에 통과 음식점앞에서 대장님이 괜찮다는 얘기다. 그런데 컨디션이 안좋다는 한 분은 여기서 끝내겠단다.
배후령은 용화산과 오봉산의 들머리이자 날꼬리
배후령 고개(해발 600m)
춘천과 화천의 경계 고개인 배후령은 서쪽 용화산과 동쪽 오봉산 각각의 들머리이자 날꼬리이기도 하다. 오봉산 정상 넘어 청평사까지 두시간 코스라니 5시까지는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또 가야만 하는 산이다. 1993년 5월 말경 혼자서 청평사까지만 왔다간 경험이 있던 곳이라 정상을 밟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는 등산이 목표가 아니라 최고 오래된 고려시대 정원과 이 청평사 고찰을 찾아 배를 타고 왔었다. 등산은 항상 부수적인 때였다.
다섯개 봉우리로 이루어졌다는 오봉산은 춘천 시민들이 쉽게 찾아가서 소양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휴식처. 물과 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마적산(605m:서쪽끝), 오봉산(779m), 부용산(882m) 봉화산(736m동쪽 끝)이 남쪽으로 역U자를 형성 소양호가 깊숙히 들어와 있고 청평사가 화점(花點)에 둥지를 틀고 있다.
오봉산은 산행 시작 다시하는 꼴
등산을 다시 시작하는 꼴이 되어 힘은 배 이상 드는 것 같다. 북사면이라 역시 빙판이 많고 가파르다. 용화산 큰고개 들머리에서와 비슷하다. 제1봉은 알아채지도 못하고 지나쳤다. 싸래기눈이 조금씩 떨어진다. 평탄한 바위가 있는 제2봉(2:55)은 관음봉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배후령의 46번 도로가 눈에 훤히 들어온다. 대장님과 아이젠 두고 왔다는 분이 우리를 따라잡는다. 후미 가이드 포함 10명이 배후령에서 버스에 올라탔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35명중 제일 꼴찌로 가고 있는 중이다.
바위와 소나무의 어울림
3:10분이 되자 선두가 무전으로 도착했다고 알린다. 대장님이 바위를 올라오다 뒤를 돌아보란다. 푸른 소나무를 받치고 있는 ``청솔바위.``(3:15) 지도에 나오는 지명이다. 우리 둘만 왔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소나무와 바위는 찰떡 궁합인가. 참나무가 그처럼 바위에 있다면 어울릴까? 더욱이 잎이 진 앙상한 가지를 하고 있는 겨울에 푸르게 생명력을 보여주며 무생물인 바위에 기대어 공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절묘한 어울림. 용화산과 이 곳 오봉산에서 암릉길을 지나오며 보인 이 조화가 누가 시켰다고 한들 가능했겠는가!!! 바위는 본디 산에 있는 것. 소나무(pine)는 원래 ``산에서 나는 나무``라는 뜻의 핀(pin)에서 왔다. 진정한 산의 주인인 무생물의 돌과 생명체의 소나무가 쌍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바위와의 공생으로 청솔바위(소나무가 너무 짤려서)
정상에서의 조망
쇠줄을 붙잡고 바위를 한번 치고 오르니 오봉산의 중앙봉(3봉;3:25-27)이자 최고봉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쇠밧줄이든 합성수지 밧줄이든 바위를 잡고 오르는 것은 재미있다. 북동쪽 제일 뒤의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추곡약수로 유명하다는 사명산(1198m)이 보이고 그 아래 움푹하게 들어간 곳 아래에는 양구의 소양호가 자리잡고 있단다. 남서쪽으로는 수리봉 (650m), 마적산까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정상이라서 사진 한 컷.
홈통바위는 소양호로 내려가는 통로인가
쇠사슬 잡고 홈통 (구멍) 바위를
대부분이 슬랩지역이다. 바위사이로 툭 떨어지는 홈통바위. 소양호로 내려가는 출입구인가. 너무 깊다. 밧줄을 잡고 가까스로 빠져나오니 그리 멀지 않게 산사이 한가운데 소양호가 얼굴을 살포시 내민다. 고즈넉이 자리잡은 청평사도 보인다. 다시 내려오다 보니 멀쭉한 바위가 서있다. 한 아주머니가 부여 안고 금년 좋은 일만 있게 해 달라며 꼭 껴안는다. 전설로 흔히 내려오는 망부석.
망부석을 껴 안고 소원을 빌어
쇠밧줄 지대는 너무 길어
4봉 (3:37)과 5봉을 서둘러 찍고... 비가 올려고 한다. 주차장에서는 비에 대비 빨리 빠져나가자고 좀 서두르란다. 그런데 보며 사진 찍을 게 많고 무릎도 아프다. 정말 과부하 걸린게 확연하다. 칼바위를 지나 슬랩지대에는 쇠줄로 계속 되어 있어 손목에 힘이 쭉 빠진다. 오죽 쇠줄이 길면 ``쇠줄 지역``이라고 지도에 표시했을까. 오봉산이 이렇게 슬랩이 많은 줄 몰랐다. 물론 서쪽으로 비켜가면 골짜기가 나와 다른 맛이 있을 것이다. 힘들지만 오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바위지대를 좋아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늑하게 자리잡은 청평사를 돌아볼 생각도 못하고 내려오는데 옛날에 봤던 전설이 얽혀 있는 영지(影池)와 구성폭포(九聲瀑布)가 나온다. 한가롭게 거니는 젊은 연인이 호젓한 청평사 입구 도로에 너무 잘 어울려 보인다. 폭포는 수량이 제법 많다. 날이 흐려 사진은 잘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구성폭포
정신 없이 내려오다 보니 땀이 제법 났고 이렇게 겨울산행을 길게 했는데 늦게 온 죄로 하산주를 못하니 서운하다. 그러자 배후령에 버스를 탔던 분이 친구 둘과 길가 원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막걸리를 한다. 구면이라고 일단 한 사발만 달랬다. 대장은 빨리오라고 아우성이다. 사실 5시까지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나도 시간 내 골인한 셈이다.
마지막 일행도 그냥 배후령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무리였다고 하신다. 나 역시 무릎이 안 좋고 쇠줄을 많이 잡아 팔목 어깨가 뻐근하다. 대장님이 차내에서 팔운동을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예고는 했었다.
소양호 배 안 탄 것은 아쉬움으로
배를 타고 소양호를 건넜으면 또 다른 분위기였을 텐데… 1973년 건설된 소양댐과 청평사간 유람선과 보트의 왕복 요금이 1982년 300원, 800원. `93년 보트는 없어지고 유람선 요금은 2,400원, 현재(2004)는 4,000원으로 세월의 변화를 돈으로 바꿔 보았다.
1시간 25분을 달리다 저녁식사를 위해 가평휴게소에 정차해 내리니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한다. 총2시간 45분만인 7시45분에 지하철 복정역에 도착 무사히 귀경했다.
오봉산 망부석에서 바라본 소양호
에필로그
암릉이나 스랩 지역이 많아 겨울에 두개의 산을 섭렵하기가 나로서는 좀 넘쳤다. 그래도 평소 안내 산악회에서 이곳의 이어가기 코스를 잘 잡지 않는데 해낸 게 뿌듯하다. 용화산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오봉산 역시 오봉이 오밀조밀하다. 다음에는 오봉산을 U자로 해본다든가 용화산부터 오봉 중간에서 해치고개로 내려 왔다 부용산으로 가 보는 산행도 재미있을 것 같다. 특히 봄산행이 제격일 것 같다. 산행을 할수록 방방곡곡 산들이 정말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 차가 빙판에 미끄러진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솜씨가 서툰데다 흐린 날씨 때문에 사진이 뿌옇다 .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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