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연륜이 쌓인 노인의 풍부한 경험을 높이 사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가치 있는 경험에서 나오는 노인들의 지혜도 새로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햇빛 본 날이라고는 일천하기 짝이 없는 초등학생들이야말로 스마트폰 갖고 놀기를 손오공 여의봉 다루듯 한다. 도대체 지적 능력의 판단 기준은 뭘까.
몇 년 전부터 재무학에서는 개인의 인지능력과 금융소비 패턴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사람의 인지능력은 분석력과 경험의 합이다. 분석력이라 함은 다시 기억력, 추리력, 공간지각력, 정보 처리 속도 등이 합쳐진 것인데 20대 때 가장 뛰어나고 나이가 들수록 해마다 1%씩 줄어든다. 따라서 굳이 치매가 아니더라도 고령이 되면 분석 능력에서 심각한 애로를 겪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나이가 들면서 경험은 급속히 늘어난다. 희소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년기 이후에는 그 증가세가 매우 완만해진다. 또박또박 줄어드는 분석력을 경험이 상쇄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인지능력은 날마다 줄어드는 분석력과 늘어나는 경험이 합쳐지면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중장년 때 최고조를 이루고 이후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역 U자' 형태를 그린다.
그런데 미국인의 연령대별 금융자산 투자수익률을 조사한 결과에서 이 모양이 그대로 나왔다. 청년기 이후 투자수익률이 점차 높아져 42세 때 정점을 이룬 후 하락세로 반전, 70세 이후에는 급락하는 모양새이다. 나이 들수록 인지능력 저하로 인해 효과적인 투자 결정에 실패한다는 증거다. 신용카드나 주택담보대출 등 다른 많은 금융 선택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발견되는 특징이다.
이는 흔히 고연령층의 자산 배분에서 위험자산 비중이 낮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기존 이론대로 노인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큰 탓도 있겠지만 거듭되는 수익률 저하를 몸소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들 연구결과는 은퇴재무설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즉 은퇴자들일수록 자신의 재무적 의사결정능력을 과신하지 말고 되도록 전문적인 자문역에게 자산운용을 맡기라는 것이다.
또한 직접보다는 간접투자상품에, 개별 종목보다는 지수연계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오류를 줄이는 길이다. 이는 남다른 지적 능력과 투자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은퇴자들에게 더더욱 필요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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