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때는 내신만 잘하면 대학 간다더니 2학년에 올라가니 논술공부를 해야 한다 하고. 3학년 돼서는 수능이 중요하다고 하니…. 우리는 저주받은 89년생이에요.”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의 최대 피해자인 현 고3 수험생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2008학년도 대입의 중요 전형요소가 매년 뒤바뀌면서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ㆍ논술ㆍ수능)’에 갇혀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교육 수요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의 단면이다. 교육정책만큼 역대 정부에서 변경이 잦았던 정책도 없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의 궤도 수정이 뒤따랐다. 차기 정부도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육정책을 내놓을 전망이다. 벌써 교육부 해체설에 자립형 사립고 설립 지역까지 거론되는 등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정치적 이해관계로 휘둘리지 않을 종합적인 교육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생 선발은 대학에 맡겨야=대입정책은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사교육비 팽창, 서울 강남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 조기유학 러시 등은 모두 대학 입시라는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입정책을 올바르게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주지 않고 정부가 쥐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소위 3불(不)정책이라고 불리는 대입 3원칙(본고사ㆍ고교등급제ㆍ기여입학제 금지)을 강조하면서 대학들은 정부가 제시한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 결과 불필요한 경쟁과 개인의 창의력을 짓밟는 교육제도에 염증을 낸 어린 학생들의 조기유학 러시가 일어났다. 한국에 남은 학생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학원과 과외에 매달리면서 사교육시장은 커져갔다. 공교육은 더욱더 제자리를 잃었다. 한준상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입문제를 풀면 이와 하나로 묶인 사교육비 경감이나 수능개혁ㆍ교직개혁 등도 쉽게 해결된다”면서 “정부는 대학이 대입문제를 풀어가도록 도와주고 대학이 스스로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교육비 절감대책 필요=공교육 예산과 맞먹는 사교육비를 낮출 특단의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자녀에게 공교육 외에 보다 다양하고 질 높은 사교육을 시키려는 수요는 전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만큼 인정해야 하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개인의 경쟁력 향상과는 무관한 불필요한 사교육은 퇴출돼야 한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도시가구의 가구당 월평균 학원 및 개인교습비 지출은 15만2,054원. 이는 참여정부 초기보다 30% 이상 늘어났으며 통계청 조사가 시작된 지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사교육시장 규모는 30조원을 넘어서 2007년 공교육예산 31조원과 같은 수준으로 커졌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5년 동안 지출된 총 사교육비가 105조원에 달해 김대중 정부 기간 중 지출된 51조원보다 무려 2배 이상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공교육을 바로 세워 불필요한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자율형 사립고 등 300개 설립, 영어 공교육 활성화 등으로 관련 사교육비를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재 6개교인 자사고 수가 늘어나면 더 많은 학생들이 자사고 진학을 위해 사교육을 받게 될 것이며 영어 공교육 활성화 역시 학교 수업을 따라가고 더 앞서가기 위해 사교육 수요를 늘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만큼 보다 신중한 세부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전방위로 경쟁원리 도입을=공교육이 무너진 이유 중 하나는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부 교사들은 임용만 되면 정년이 보장된다는 ‘철밥통’ 인식으로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 일선 학교들도 정부의 평준화정책에 기대어 다른 학교들과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 때문에 무능한 교사와 학교를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외국에서는 경쟁을 통한 교육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 일본의 경우 오는 2009년부터 교원면허갱신제도를 도입, 10년마다 교사를 평가해 기준에 미달하면 퇴출시키기로 했다. 영국도 교육개혁 10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나라 수능에 해당하는 GCSE 성적이 나쁜 학교와 실력이 떨어지는 교사는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시는 성적이 나쁜 학교를 폐교시키고 유능한 교사에게는 성과급을 지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교사 퇴출제는커녕 경쟁원리 도입의 최소 단계인 교사평가제도조차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원평가 관련법이 전교조 등 교원단체의 반대 때문에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경쟁체제 도입에 따른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퇴출이 목표가 아닌 교사 발전을 지원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교원평가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경쟁력 위해 영어 공교육 확대해야=영어 공교육 활성화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 꼽힌다.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를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에 대해 외국인들이 투자 및 이주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사교육비의 절반에 달하는 무려 14조~15조원의 돈이 영어교육에 쓰이고 중학교ㆍ고등학교ㆍ대학교까지 10년 이상을 영어공부에 할애하는데도 우리나라의 영어경쟁력은 싱가포르나 인도 등에 비해 턱없이 낮은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학교 영어교육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학ㆍ과학 등 다른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몰입(Immersion)’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상 교육에서 영어 사용빈도를 높여야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영훈초등학교 등 일부 사립학교에서 일부 과목에 한해 몰입교육을 실시해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영어수업을 확대하고 원어민 보조교사를 체계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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