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미래부 장관 내정자 재산이 무려…
15세때 미국 이민… 맨손으로 벤처 성공신화 일궈■ 박근혜정부 조각 마무리-김종훈 미래부 장관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하며 학구열 불태워유리시스템즈 창업 '미 400대 부자' 올라현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연구소 '벨' 사장
유주희기자 ginger@sed.co.kr
양철민기자 chopin@sed.co.kr
15세 한국인 소년이 건너간 낯선 땅 미국. 첫발을 내디딘 곳은 메릴랜드주 빈민촌이었다. 그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에 전념했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전교 2등으로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로 진학, 동대학원 기술경영학 석사와 메릴랜드대 공학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17일 새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의 초대 장관으로 내정된 김종훈(53)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 이야기다. 김 내정자는 흔한 아메리칸 드리머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바로 창업이다. 창업은 성공으로 이어졌고 고학에도 꿈을 잃지 않은 소년은 현재 세계 최대의 민간 정보기술통신(ICT) 연구소인 벨연구소(Alcatel-Lucent Bell Labs)를 이끌고 있다.
그는 성공적인 벤처창업 경험과 '아메리칸 드림'의 본보기로 주목을 받아왔다. 김 내정자는 지난 1992년 딸의 이름을 따 벤처회사 '유리시스템즈'를 설립했다. 전투기의 통신장비를 개선하는 회사였다. 유리시스템즈는 6년 후 장비 상용화에 성공했고 대당 가격이 10만달러대로 치솟는 '대박'을 터뜨렸다.
글로벌 대기업도 이 같은 성과에 주목했다. 루슨트테크놀로지스가 인수 의향을 밝혔다. 김 내정자는 유리시스템즈를 10억달러에 매각하면서 미국 400대 부자 반열에 올랐다. 당시 김 내정자의 나이는 38세에 불과했다. 그는 매각과 함께 루슨트테크놀로지스의 광네트워크 사업부문 사장으로 영입됐다.
한국인 출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례는 적지 않지만 벤처 창업으로 이만한 성공을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김 내정자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의지만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가능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내의 벤처 업계에서도 김 내정자를 반기는 분위기다. 김영한 브레인가든 대표는 "정보기술(IT) 분야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반갑다"며 "미국과 글로벌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분으로서 소신과 장기적인 시각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 내정자는 2005년부터는 벨연구소 사장으로 재직해왔다. 외부 출신으로는 처음이다. 미국 뉴저지 주에 위치한 벨연구소는 루슨트테크놀로지가 설립한 민간 통신기술 연구개발(R&D) 기관이다. 벨연구소가 그를 사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3개월 동안이나 사장직을 비워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 1925년 설립됐으며 전화교환기, 트랜지스터, 디지털카메라, 광케이블, 통신∙위성 기술 등의 분야 2만9,700개의 활성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벨연구소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만 13명에 달한다. 2006년 루슨트테크놀로지와 프랑스의 알카텔이 합병하면서 알카텔-루슨트 산하 조직이 됐다. 2009년 기준으로 벨연구소가 R&D에 투입한 자금은 24억유로(약 3조4,500억원)가 넘는다.
김 내정자는 지금껏 매년 2~3차례 한국을 방문해 강연을 하거나 각종 포럼 등에 참석했다. 한국알카텔루슨트의 한 관계자는 "김 내정자가 벨연구소 사장과 장관을 겸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 내정자는 오랜 미국 생활 탓에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김 내정자는 2000년대 중반 스탠퍼드대 한국학 석좌교수기금에 200만달러를, 메릴랜드대 공대에 500만달러를 각각 기부했다. '신화'에 가까운 성공을 거둔 벤처 창업가로서 후배 양성과 사회 발전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은 것이다. 메릴랜드대는 기부금으로 종합연구동을 건립하고 이를 '김종훈관'으로 명명했다.
김 내정자는 박사 학위를 딴 후 유리시스템즈를 설립하기 전까지 미 해군의 핵잠수함 장교로 7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2011년부터는 알카텔루슨트 전략 부문장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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