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뜰 새 없습니다. 지난해보다 일이 두 배 늘었거든요.” 지난 18일 SK에너지 울산공장의 해상출하조정실. 최영식 해상출하조정실 총반장은 “최근 수출물량이 급격히 늘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해상출하 업무가 바빠진 것은 SK에너지가 최근 몇 년 사이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 SK에너지 울산공장의 7개 부두는 요즘 중국과 동남아는 물론 유럽과 미주까지 석유제품을 실어가려는 배들이 줄을 잇고 있다. SK에너지는 선적시간을 줄이기 위해 최근 펌핑 시설까지 업그레이드했을 정도다. 정유사들의 이 같은 수출 드라이브 덕분에 석유제품은 반도체를 제치고 국내 주요 제품 가운데 수출 1위에 올랐다. 정유사들은 국내시장이 공급과잉을 우려할 정도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몇년 전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공을 들여왔다. SK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고유가 시대에 편승해 국내 정유사들이 과다한 이익을 취한다는 소비자들의 비난이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회사의 이익이 개선되는 것은 수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정유제품 수출액은 183억4,800만달러로 주요 수출품목 중 1위로 올라섰다. 지난 2006년과 2007년 반도체ㆍ자동차ㆍ무선통신기기ㆍ선박에 이어 5위에 머물렀던 석유제품이 한국의 대표 수출상품이 된 것. 이에 따라 정유업계 전체 매출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51.0%를 기록해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에는 53.5%까지 올랐다. 정유사들의 수출이 늘어난 데는 시장상황의 덕도 컸다.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유럽과 신흥 산업국을 중심으로 경유 수요가 대폭 늘고 있다. 올 봄에는 중국 쓰촨성(四川省) 대지진에 따른 일부 중국 정유공장 가동 중단과 중국의 농번기 수요 폭발 등으로 경유 가격이 더욱 가파르게 올랐다. 국내 정유사들이 미리미리 친환경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놓은 것도 수출시장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S-OIL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탈황설비 등 고급제품 생산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국제 석유제품 시장이 고급품 위주로 변할 것을 예측하고 미리 투자해둔 것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SK에너지는 경유만 해도 16개 나라의 규격을 맞춘 제품을 따로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SK에너지 울산공장의 한 관계자는 “본사에서 수출시장을 개척해 그 나라의 규격을 알려주면 공장에서는 그대로 맞춤 생산해 선적한다”면서 “과거보다 일은 늘어났지만 정유사의 미래는 수출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