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 역할론’를 내세움에 따라 재정규모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밝힌 재정규모는 88조원으로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서는 21조원 늘어난 것이지만 올해 초 계획했던 예산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를 갖고 재정확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경기하강을 막기 위해 결국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현 상황에서는 추경 카드를 꺼낼 명분이 적어 가을철 태풍을 매개로 한 이른바 ‘태풍 발(發) 추경’을 대안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정은 현재 이월ㆍ불용 예산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점을 재정확대의 구실로 삼고 있다. 이월예산은 납기변경 등으로 지출이 미뤄진 돈이고 불용액은 사업설계 변경 등으로 쓰지 않고 남은 돈을 말한다. 최근 수년간 이월ㆍ불용 규모는 10조원을 웃돌았다. 지난 2003년 10조1,000억원(이월 6조원, 불용 4조1,000억원), 2004년 11조1,000억원(이월 4조1,000억원, 불용 7조원)에 달했으며 4조원대의 추경을 편성하면서 재정집행을 독려한 지난해에도 7조5,000억원(이월 2조4,000억원, 불용 5조1,000억원)의 돈이 남았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한 가계의 살림살이도 위기상황에 대비해 자금을 비축해두는데 국가 예산을 모두 쓸 수 있겠느냐”며 “이월ㆍ불용 예산 최소화를 독려해도 현 시스템상 수조원은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열린우리당이 주문하고 있는 ‘경기하강에 대비한 재정역할’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연스레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경기부양책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기획예산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추경 내역을 보면 세입에서 차질을 빚은 부분만 이뤄졌다”며 “재정이라는 짜여진 틀 속에서 인위적으로 경기부양을 하는 것은 제한돼 있다”고 밝혀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재정경제부나 기획예산처 고위관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올해 추경이 없을 것이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태풍 ‘에위니아’가 북상하고 있는데다 내년 ‘대선경제’를 앞두고 있어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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