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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새지도부 3人 프로필] 후진타오ㆍ원자바오ㆍ우방궈
입력2003-03-16 00:00:00
수정
2003.03.16 00:00:00
이진우 기자
(후진타오)
92년 50세의 나이로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파격적으로 발탁되면서 `차기 지도자`로 일찌감치 주목 받아왔다. 98년 3월 제9기 전인대에서 국가 부주석직에 오른 데 이어 당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직도 차지함으로써 명실상부 `장쩌민 이후` 지위를 굳혔다.
총명함과 온화,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지만, 정치 행사 등에서 언행을 지나치게 자제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처신에 능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롱촨(龍川) 후씨 44대인 후진타오는 1942년 12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나 65년 중국의 명문 칭화(淸華)대 수리공정과를 졸업했다. 관측통들은 앞으로 약 2년간 당 원로 및 군부들의 지지 획득 작업에 매진, 권력의 기반을 조성한 뒤 이후 점진적인 정치ㆍ경제 전반의 개혁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바오)
퇴진한 주룽지 총리의 측근으로, 주 총리아래서 국무원 기구개편안 작성을 진두지휘해 일찌감치 차기 총리에 내정됐었다.
`무실역행의 표본`으로 칭송 듣는 기술관료로 정직과 성실, 근면의 미덕에 치밀함까지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85~93년에 결쳐 당 중앙판공실 부주임 및 주임으로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 장쩌민 등 3명의 총서기를 보필하는 등 보수ㆍ개혁파 어느 쪽에도 거리를 두지 않고 있다. 자오쯔양을 수행해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 중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개혁성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권력을 잡은 장쩌민은 판공청 주임에서 내몰지 않고 그를 계속 중용하기도 했다.
1942년 톈진(天津) 출생으로 베이징 지질학원 지질광산과를 나와 간쑤(甘肅)성에서 지질분야 전문가로 14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
장쩌민의 핵심 측근으로 국무원 부총리로 있으면서 국유기업 개혁을 진두지휘했었다.
상하이 시위원회 상무위원(1983∼1985년)으로 재직중이던 85년 `상하이 다거(大哥ㆍ큰형)`로 불리던 시 당서기 천궈둥(陳國棟)의 눈에 띄어 시 부서기로 발탁, 중앙무대 영전의 발판을 마련. 이후 상하이 시장이던 장 주석과의 관계가 밀접해져 91년 중앙으로 전출된 주룽지 후임으로 당 서기에 임명됐다.
중국대형기업공업위원회 서기직도 겸직해왔으며 부지런하지만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룽지 전 총리와는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47년 안후이(安徽)성 페이둥(肥東)에서 태어나 66년 칭화대 무선전자학과에 입학했으며 공산당에는 64년 입당했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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