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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한대수 '나이 들어도 철 안들어 난 올드보이"

아리랑 방송 '골든 구디스' 진행 한대수


한대수. 한국 포크 음악의 창시자니 한국 록 음악의 대부 같은 수식어가 거추장스러운 전설. 그냥 이름 석 자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그의 위치는 설명된다. 신화가 돼 있어야 할 아티스트는 여전히 우리 옆에 마음씨 좋고 잘 웃는 가수로 남아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한대수는 라디오 DJ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한대수는 아리랑방송 라디오(지상파ㆍ위성DMB)에서 ‘골든 구디스(Golden Goodies)’라는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3일부터 매일 오후 4시에 진행하고 있다. 조악한 앨범 한 장 손에 쥔, 입담 좀 풀 줄 아는 아이돌 스타라면 아무나 DJ가 되는 시대. 그렇게 DJ가 초라해진 이 시대에 그는 왜 마이크를 잡았을까. 그의 작지만 아담한 보금자리가 된 서울 서초동 아리랑방송 스튜디오에서 한대수를 만났다. 전설이 되기에 그의 에너지는 여전히 차고 넘친다. #1. 아빠와 DJ, 그 신기한 첫 경험. “우리 양호 분유값 벌어야 합니다.(웃음) 화폐가 필요합니다. 근데 출연료가 너무 짠 거 아냐?” 기자를 보자마자 그는 대뜸 이제 막 백일을 맞은 딸 양호 얘기부터 꺼냈다. 양호는 환갑이 넘은 그의 첫 핏줄이다. 양호한 시절, 양호한 사회에서 태어났다고 붙여준 이름이 ‘양호’다. 얼마 전 신촌에서 까페를 빌려 백일잔치까지 벌였다. ‘요즘은 보통 백일잔치를 잘 안 한다’고 PD가 충고해도 “다른 사람은 안 해도 나는 해야지”라며 웃음을 거두지 않는다. “내가 딸 낳았다니까 신문, 방송, 잡지 할 거 없이 다 기사로 내 주더라고. 깜짝 놀랐어요.내가 너무 늦게 자식을 봐서 신기했나 봐. 어떤 기분이냐고? 궁금하면 자식 낳아 봐요. 그럼 알테니(웃음).” 게스트로는 숱하게 출연했지만 진행자로 마이크를 잡은 건 TV와 라디오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한량처럼 살 것 같은 그와 초 단위까지 시간을 맞추는 라디오와 궁합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평생 내 음악세계만 펼쳐 왔는데 반대로 다른 아티스트의 보물을 찾아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에요. 내겐 색다르고 신기한 경험이지.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나누고, 재밌지 않겠어요? 재밌는 거지. 양호한 거야. (웃음)” #2. “궁합이 맞지 않았던 거라” 프로그램 시작 30분 전. 급하게 작가가 씨디 한 장을 들고 달려온다. “이 노래 틀면 안 된대요. 가사에 욕이 너무 많아 심의에 걸린대요.” 한대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그래? 할 수 없지. 그럼 다른 노래를 찾아봐야 겠군. 그 노래에 그렇게 욕이 많았나?” 돌이켜 보면 그만큼 심의와 검열에 피해를 본 아티스트도 없다. 74년 데뷔 앨범에 실린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금지곡이 됐고 2집 앨범은 유신 체제 하에 판매금지는 물론 마스터테이프까지 압수당했다. 그 후 20년간 그는 한국 땅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방송윤리위원회에서 욕이 들어가면 방송 금지를 시켜요. 청소년들도 들을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 기준이 있는 건 당연한 거에요. 방송이라면 책임이 있어야지.” ‘심의는 창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란 답을 기대했건만 얘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70년대야 후진국에서 막 성장하는 단계였으니까… 나 억울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과정이지. 나라가 먹고 살 수 있는 게 중요하지 음악을 하는 게 중요한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미국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 있기 전까지는 미개한 나라였잖아.” 그래도 아쉬움이 전혀 없을까. 한대수는 말한다. “그냥 그 시대랑 나랑 궁합이 안 맞은 거지.” #3. ‘나이 들었으니 올드, 철 없으니 보이’ “한대수~ 골든 구디스~” 멋진 멘트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아리랑방송의 모든 프로그램은 영어로 진행된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20년간 뉴욕에서 활동한 그에게 영어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천하의 한대수가 라디오 부스에선 초보 DJ일 뿐이다. 멘트를 하다 실수도 하고 순서도 헷갈린다. “기자가 옆에 있으니까 헷갈린다”며 구박도 하지만 그래도 ‘클래쉬’의 곡을 멋지게 소개하고선 만족해 하며 즐거워한다. “이 정도면 양호하지.(웃음) 나 이제 일주일 됐어.” 그의 활동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왕성해진다.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97년 이후 그는 거의 매년 앨범을 발표하고 각종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해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대수표 에너지의 비결은 자신감이다. “나이 환갑에 음악하는 사람 외국에도 몇 없어요. 밑져야 본전이지. 나 이제 할아버지잖아.(웃음) 내 캐치 프레이즈가 ‘올드 보이’에요. 나이가 들어서 올드, 철이 안 들어서 보이.” 건방진 질문이 마지막이다. ‘그럼 철은 언제 드나요?’ 우문엔 현답이 제 격이다. “살다 보니까 사는 게 다 싱겁네. 60년을 살건 80년을 살건 사는 건 한 순간이거든. 나이들고 병들어 죽고. 그래서 후손이 중요한 거야. 후손에겐 기억이 남잖아. 나도 후손이 생겼으니 백만장자도 부러울 게 없지.” 마지막까지 유쾌한 딸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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