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어차피 국회가 다룰 것이라면 “더 이상 늦추지 말자”는 주장은 중국과 일본에 둘러싸여 샌드위치 신세인 우리나라가 현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유일한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이 한미 FTA라는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 의회의 비준 일정이 안개 속인데다 오는 11월 대선 등으로 미 정치지형의 변화가 예상되는 국면에서 재협상 가능성에 쐐기를 박고 더 이상 우리측 이익을 훼손당하지 않도록 “보험을 들어놓자”는 현실론도 있다. 전 정부의 최우선 국정어젠다가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시그널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않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스크린쿼터ㆍ쇠고기ㆍ자동차ㆍ의약품에 걸친 ‘4대 선결조건’을 내줬다는 비판으로 곤욕을 치렀다. 참여정부가 4대 선결조건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것은 부상하는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 사이를 헤치고 나아갈 길을 ‘한미 FTA’로 봤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과 일본 역시 한미 FTA에 대해서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이전까지는 관심 없다던 FT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참여정부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확대되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조선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한미 FTA 추진배경 중 하나”라고 말했다. 먼 나라인 미국과의 확실한 동맹을 바탕으로 가까운 강대국을 견제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전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미 FTA를 위해 4대 조건을 내줬다면 빨리 목적을 달성해야 이미 치른 비용을 회수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더 이상 한미 FTA의 우리측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강구하는 차원도 있다. 미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한미 FTA 비준에 반대하고 유력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역시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어 미측이 재협상을 제기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이준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은 “한미 FTA를 약속했던 정치세력이 비준을 차질 없이 해야 미 정부와 의회가 한국을 신뢰할 것”이라며 “17대 국회에 비준을 해야 미국 측에 다른 빌미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화 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우리 국회가 비준을 해야 재계가 미 의회 로비에 적극 나서 미측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한미 FTA를 활용하고 농민 등이 피해대책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도 한미 FTA에 대한 가부를 빨리 결정짓는 것이 효과적인 측면이 크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한미 FTA를 통해 하려던 각종 법률 제ㆍ개정 등 국내제도 선진화는 비준안 처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2년에 걸쳐 치열한 논란의 대상이었던 한미 FTA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릴 시점이 됐다고 학계와 재계ㆍ시민단체 등 관련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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