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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표절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
영국의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는 2007년 삼척의 속섬 사진을 찍어 ‘솔섬’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전시했다. 2010년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같은 속섬을 찍은 아마추어 사진가 김성필의 ‘아침을 기다리며’ 작품이 대한항공 광고에 쓰이면서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케나 측은 김성필의 사진 구도가 솔섬과 거의 동일하고, 광고문구에 솔솔, 솔섬 등 케나가 만든 명칭을 활용한 것이 표절이라고 주장한다. 대한항공과 김성필 측은 ‘솔섬’과 ‘아침을 기다리며’가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솔섬은 케나 이전에 많은 사람이 찍어 왔고 자연경관에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마이클 케냐 측의 전시를 맡은 공근혜갤러리와 대한항공은 고소와 맞고소로 표절문제는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카메라를 통해 표현되는 사진의 한계 때문에 표절 논란은 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 논쟁의 핵심 역시 사진의 복제성에 있다.
표절 여부를 떠나 이 문제를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 하필 마이클 케나의 사진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까?
마이클 케나의 작품은 70년대부터 흑백 풍경 사진을 꾸준히 작업했다. 그의 작품은 여백의 미와 사색적인 분위기로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작품은 남달랐고, 확실히 독점적인 지위가 있었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가 지침서와 같이 케나의 작품을 끼고 살았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된 이후 풍경사진은 급격히 증가한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 대부분은 풍경사진을 찍는다. 훌륭한 장비, 경험을 통해 얻는 테크닉으로 많은 아마추어가 수준 높은 사진을 선보인다. 30여년전 마이클 케나의 사진은 소수만이 찍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흉내 정도는 낸다. 장인의 경지로 가는 험난했던 길에 고속도로가 뚫린 셈이다.
물론 사진가의 아이디어와 컨셉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컨셉이 남달라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시대의 첨단을 걷던 기술들이 사라지거나 대중화되듯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예술의 양식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일반적인 것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미지 중심적인 풍경사진은 문법화된 구도와 계량화된 수치값을 따르면 어렵지 않게 결과물을 얻는다. 풍경사진의 예술적 가치는 그렇기 때문에 과거보다 떨어진다.
마이클 케나가 표절 소송에서 이기냐 지냐는 실상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의 스타일은 이미 어디서든 복제되고 있다. 당대 예술 사진 이미지 자체보다는 철학을 담거나 새로운 개념을 선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표절하기 어렵고, 표절해봐야 의미가 없다. 예술은 다양해야 하고 가치의 우열을 논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분명 풍경사진은 디지털카메라의 직격탄을 맞는 영역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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