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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제 도입 신중히
입력2003-02-10 00:00:00
수정
2003.02.10 00:00:00
정부는 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와 소액투자자 보호를 위해 소송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들에게도 배상을 인정하는 `증권집단소송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현재 법안이 국회법재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계류 중이다.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되는 상장기업과 코스닥기업의 허위공시, 부실회계와 모든 상장ㆍ코스닥 등록법인이 주가조작으로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이를 배상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투명경영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입법취지는 좋다.
문제는 입법취지는 좋으나 그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모든 법제도의 도입은 그 순기능과 역기능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집단소송제에 피소된 기업을 보면 상대적으로 기업지배구조가 선진화돼 있어 투명경영과 정도경영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굴지의 세계적 기업들이다. 예컨대 증권집단소송으로 피소됐던 유수한 대기업 중에는 AT&T, 보잉, 시스코, 코카콜라, 컴팩,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세계 유수 기업의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집단소송제의 도입이 진정으로 투명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또 미국에서 진행되는 집단소송 중 95%는 최종판결 이전에 화해나 합의로 끝난다. 기업들은 자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화해를 서두르는 것이다.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들도 어떻게든 `한건` 올리려 하기 때문에 재판의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경우에도 무리하게 소송을 추진하다가 합의에 동의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집단소송제가 진정으로 소액투자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경영투명성 향상에 기여할지는 좀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집단소송제의 폐해가 드러나자 미국정부는 제도도입 후 이미 두차례의 제도수정을 했고 현재는 세번째 수정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한편 가까이 일본에서도 10년간의 검토 끝에 집단소송제의 부작용이 이득보다 크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제도의 도입을 포기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난히 많은 고소(특히 무고)ㆍ고발 건수, 기업에 경제적 도움을 요구하는 뿌리깊은 관행에 비춰봤을 때 집단소송의 도입에 따른 남용의 가능성이 높다. 집단소송은 대부분 소송액수가 크기 때문에 소송에 피소됐다는 사실만으로 금융회사나 거래업체는 거래를 꺼리게 되고 일부 투자자는 주식을 투매하게 돼 소송제기를 계획하고 미리 보유주식을 매각한 극소수의 투자자를 제외한 대다수 선의의 투자자는 오히려 주가하락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선의의 기업이 재판에 연루돼 재판 결과 승소한 경우에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집단소송으로 인해 기업이 입은 피해금액은 클 것이며 이를 소액투자가들이 보상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제 도입이 기업들에게 불투명경영에 대한 사전적인 억제기능을 줄 수 있지만 이 같은 기능은 금융감독기관의 감시 및 감독을 강화하고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소액투자자 보호가 시급한 과제라면 민사소송법상의 사적 구제수단인 `선정당사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방안이 있다. 일본의 경우처럼 선정당사자 소송 중인 경우에도 추가로 소송 참가가 가능하도록 하는 `추가적 선정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혹은 허위공시, 분식회계 등에 대한 규정이 주관적 판단의 여지가 크고 사후적으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부분이 있으므로 행정적 제재나 형사소추된 경우로 한정해 집단소송을 허용하는 방안이 있다.
한편으로는 원고의 입증책임 부담, 변호사 성공보수제도 등 수임료의 제한, 배상책임 상한제의 도입, 재판비용의 패자부담 방식도입, 인지액 상한설정의 폐지, 소송가액 최저한도의 규정, 출소기한의 한정, 대표당사자의 요건강화 등 확실한 남소 방지책을 마련한 후 일정규모 이상의 대기업이 아닌 전 상장기업과 코스닥 등록기업에 집단소송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인권(한국경제연구원 법경제연구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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