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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빌딩서 추락해라" 기도하듯 한국도…
재정·규제완화·민자 세 축으로 조선·서비스 집중 지원을■ [코리안 뉴딜로 불황 넘자] 재정 마중물로 민간 투자 물꼬 터야해양플랜트·신재생 에너지 시설 등 투자땐경기부양 효과 크고 일자리 창출에도 한몫불합리한 규제·법제도 정비 뒷받침 돼야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국내 한 조선사가 초대형 해양 원유생산 플랜트를 선주에게 인도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조선업은 사회간접자본(SOC), 서비스업 등과 함께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시급하게 지원해야 할 3대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경제DB
대공황이던 지난 1930년대 초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공사현장 주변은 매일 아침 일자리를 구하려는 인부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들 대기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존 작업자 중 누가 떨어지지는 않는지 바라봤다. 누군가 추락하면 자신에게 일자리가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경기불황이 자아낸 살풍경이다. 당시 상황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심해지는 고용난에 청년ㆍ기성세대 간 구직쟁탈전이 빚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불황→기업투자 부진→취업난'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불황의 악순환 고리가 길고 굵게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선거를 앞두고 지금처럼 '정책공황'에 빠져 있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년 성장률을 2%대의 저성장세로 점치고 있지만 지금처럼 정책적으로 손을 놓고 있으면 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적극적인 재정투입이다. 하지만 재정만 갖고 경기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재정절벽' 사태가 보여주듯 정부가 마중물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넘치는 민간자금을 투자처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한번 요구되는 것이 바로 대대적인 규제완화 정책이며 이를 통해 민간 부문의 투자 호응이 이뤄져야 경기회복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재정투입-규제완화-민간투자'의 3박자가 관건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업과 사회간접자본(SOC)사업, 서비스업(의료, 사회복지, 관광ㆍ레저 등)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시급하게 지원이 집중돼야 할 3대 축으로 꼽힌다.
우선 조선업의 경우 업계 자체 고용인원만 10만여명에 달하는 일자리 효자 산업이다. 관련 기자재업종까지 포함한다면 연관 고용효과는 50만명대에 이른다. 조선업은 전세계적인 침체로 물동량이 줄어든 탓에 고스란히 타격을 받고 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정부가 조선업계의 위기 국면을 해결해주는 일종의 '브리지(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먼저 조선업계의 신성장 사업으로 꼽히는 해양 플랜트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 인재육성에 투입되는 재정지원 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다. 배영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000년대 들어 해양 플랜트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우리 조선사들의 시장점유 실적은 아직 미미하다"며 "무엇보다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가 부족한데 정부가 재정지원을 더욱 확대해 인재를 대거 확보하고 해양채굴 설비모듈이나 구조물 등에서 특화된 중소 조선사 등을 지원해 대기업과 함께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업의 기존 주력 분야인 선박제조와 관련해서는 공공 부문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선박발주 수요를 일부 보완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국전력이 여러 척의 선박을 발주해 우리 업계에서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역할을 했는데 제한적이나마 공기업 등 공공기관들이 선박 계획 발주 수요를 만들어주면 중소 조선사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뿐인 금융지원'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활성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조선업계에 선박금융지원 방침을 발표했지만 국책은행만 움직일 뿐 민간 시중은행들은 소극적"이라며 실효성 있는 금융지원 방안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와 재난ㆍ재해시설 SOC 분야의 재정투자를 다시 살려 건설 부문 고용확대를 견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건설업은 깊은 침체에 빠져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기여도 측면에서 마이너스(-0.4%)를 기록했다. 이는 그만큼 관련 일자리도 줄었음을 시사한다. 권오현 건설산업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SOC 부문이 과잉공급됐다고 평가 받지만 아직도 관련 인프라가 미흡한 부문이 있는 만큼 해당 사업에 재정을 투입하면 고용유발과 인프라 확충의 효과를 함께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재해ㆍ재난 관련 시설 확충과 신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 구축 등이 대표적 분야로 꼽혔다. 그는 "일본의 경우 국가예산의 5%를 방재예산으로 투자해 그만큼 건설고용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재해에 따른 국가피해를 최소화해 정부의 재해복구비 지출을 사전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얻는다"며 "반면 국가예산 중 방재예산은 1%밖에 되지 않는데 이를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업 부문의 투자확대와 고용확충을 위해서는 재정지원뿐 아니라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완화와 관련 법제도정비가 선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료서비스 부문은 투자를 하고 싶어도 영리법인 금지 등의 제약에 걸려 사업이 표류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영리성이 적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의료서비스 사업을 하려는 소규모 투자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의료 협동조합을 추진 중인 한 관계자는 "의료 협동조합을 하면 의료복지도 개선되고 관련 고용도 늘어난다"며 "하지만 기존의 의료 관련 법체계와 상충돼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일부 이익단체의 소송압박에도 시달릴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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