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인규(38·가명)씨는 며칠 전부터 추석을 대비해 틈날 때마다 "수고했어, 고마워 여보"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결혼 5년 차지만 아직 아이가 없어 명절날 아내가 시댁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 '고맙다'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최씨는 명절 때만이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로 부인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려 하는 것이다.
여럿이 모이게 되는 추석 연휴. 즐겁기도 하지만 여러 대화가 오가다 보면 말실수 등으로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가 많다. '꼭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등 말만 잘 가려 해도 명절 스트레스의 강도가 많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정신과 전문의들의 지적이다.
일단 '고맙다'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은 아무리 자주 해도 지나치지가 않고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만큼 부부 간, 부모 자식 간에 틈나는 대로 주고받으면 좋다.
남궁기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평소 감정표현이 익숙지 않더라도 명절 연휴 동안만이라도 '고맙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일부러 하는 것이 가족 화목을 위해 좋다"며 "남편의 경우 여럿이 있는 데서 부인에게 말을 건네기 힘들다면 혼자 설거지할 때나 이동하는 차 안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면 부인의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이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가령 처가에 갔을 때 아내가 "엄마 뭐 이렇게 음식을 많이 했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위가 "장모님, 뭐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라고 말한다면 장모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음식을 많이 했느냐"는 비난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곧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만큼 가족 중에 수험생이 있다면 "공부도 좋지만 건강도 잘 챙겨라"라는 가벼운 격려성 멘트가 제격이다. "공부 열심히 해야 너 오빠처럼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훈계성 멘트는 금물이다.
취업과 결혼을 하지 못한 자녀와 조카에게는 "요즘 많이 힘들지. 노력하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거다"라는 정도가 적절하다. 특정 시기를 못 박아 "언제까지 꼭 (취업·결혼) 해야지"라는 말은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할 수 있다.
시댁이나 처가에서 평상시보다 먼저 일어나려면 사전에 미리 양해를 구해 놓는 것이 좋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바빠서 나 먼저 갈게"라며 툭 내뱉는 순간 분위기는 싸늘해질 수 있다.
김지욱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에게 지나치게 사생활을 간섭하는 질문을 하기보다는 가볍게 근황 정도만 물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