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전자상거래가 시행된 2012년 4월부터 일본산 경유 등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지난 1년간 석유 부문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1조원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당초 목표로 했던 기름 값 인하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어 정부가 수백억원의 세금을 들여 무역수지만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석유전자상거래는 정부가 기름 값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해외 석유제품 수입시 세제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준 제도다.
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석유전자상거래 제도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4월부터 올 2월까지 11개월 동안 휘발유와 경유 수입량은 699만3,000배럴을 기록하며 전년 같은 기간(100만배럴)에 비해 7배 급증했다. 금액으로 보면 11개월 동안 수입 증가액은 약 8,7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본산 경유 수입은 2009년 1,675만4,000달러(약 180억원)에서 지난해 6억958만1,000달러(약 6,600억원)로 3년 사이 무려 36배나 급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11개월 동안 석유 무역수지에서 약 9,000억원의 흑자가 줄었다"며 "연간 12개월로 환산하면 1조원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1조원가량의 흑자가 해외 석유수입으로 허공에 날아간 셈이다.
문제는 석유전자상거래가 유가인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말 석유전자상거래 시행 1년을 맞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전자상거래 시행 이후 장외 석유제품 가격인하를 유도했다"며 "주유소들이 리터당 60~103원 낮은 가격으로 구매한 뒤 저가로 판매해 소비자가격 인하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그러나 "주유소마다 규모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싸게 구입한 후 얼마나 저렴하게 판매하는지는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다"고 판매가격 파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주유소는 그나마 제도적으로 구매 및 판매내역을 일부 추적할 수 있어 사정이 낫다. 정작 전자상거래 거래물량의 60~70%를 차지하는 석유공급 대리점의 경우 애초에 판매가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세금혜택으로 저렴해진 경유와 휘발유 마진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중간 유통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주유업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리터당 100원 싸게 샀다 하더라도 누가 실제로 100원 다 싸게 팔겠느냐"며 "옆 가게보다 10원만 싸게 팔아도 장사가 잘된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1년 동안 국제 기준인 싱가포르 거래시장의 경유가격은 리터당 122원 떨어졌지만 국내 주유소 경유가격은 75원 하락하는 데 그쳐 국내 인하폭이 오히려 더 작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세금을 들여 국내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일본 정유업계의 회생을 돕는 꼴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수입산 경유 및 석유에 리터당 53원의 세금이 지원된다. 이를 지난해 전체 수입물량에 곱하면 해외에서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연간 약 700억원의 세금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지금 품질과 가격면에서 한국 정유소를 이길 수 없어 수출에 애를 먹는 일본산 경유를 한국이 세금을 들여 사주고 있다"며 "수백억원의 정부 세금을 들여 조 단위로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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