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의 금융자산 가격이 갑자기 떨어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올 1월 국제결제은행(BIS) 연차총회) 전세계 금융시장은 지난 2~3월 한차례 출렁이더니 또 한번 유동성 랠리에 들어갔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했다. BIS의 경고는 기우였던 것일까. 현재 각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중금리 안정, 부동산 투자 증가, 신종 금융기법 확산 등의 여파로 유동성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신흥시장이나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도 여전하다. 하지만 일본ㆍ유로권의 금리인상,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 중국의 긴축, 미국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등의 가능성은 전세계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글로벌 유동성의 증가 속에 시작된 국제금융시장의 안정기가 끝나가고 있는 것. 전세계적인 과잉 유동성이 당분간 이어지는 가운데 자산 거품의 붕괴 우려로 금융 불안이 반복되는 신(新)유동성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꺾일 줄 모르는 글로벌 유동성=현재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의 정책금리 인상에 유동성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중의 현금 자체는 줄고 있지만 전반적인 구매력을 뜻하는 광의의 통화는 오히려 늘어난 것.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협의의 통화지표인 M1(현금 및 요구불 예금 등)를 기준으로 글로벌 초과 유동성은 줄었지만 M2(M1에 저축성예금 외화예금 등을 더한 것)나 M3(M2에 비은행 수신고까지 포함) 기준으로는 2003ㆍ2004년 잠시 줄었을 뿐 2006년 다시 증가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각국의 해외 주식ㆍ채권 매입, 금융기관 대출, 직접투자(FDI)를 포함한 전세계 자금 흐름 규모는 2005년 6억달러 이상으로 90년대 1조~2조달러의 3배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 같은 유동성 증가는 정책 금리 인상에도 시중금리 안정,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대출 수요 급증, 은행들의 대출 여력 확대 때문”이라며 “특히 사모펀드ㆍ헤지펀드 등 신종 펀드 확산, 신종 금융수법의 확대 등으로 협의의 통화는 줄지만 광의의 유동성은 오히려 늘어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유동성 증가세도 과거 패턴과 달라=현재 전세계 자금 흐름은 ▦경상수지 흑자국인 일본과 신흥시장국에서 적자국인 미국으로의 자금 이동 ▦유럽지역마저 자금 순유입으로의 전환 ▦엔 캐리 트레이트 자금 확대 ▦위험자산 투자 증가 등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증시 호황, 중소기업 대출 증가 등 국내 유동성의 쏠림 현상도 이 같은 전세계 흐름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저금리 장기화로 전세계적으로 풍부해진 자금이 선진국보다는 신흥시장, 국채보다는 주식 등 위험이 크지만 한푼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곳으로 몰리고 있는 것. 이는 99년 정보기술(IT)주 붐, 2002년 신용카드 사태 등 과거 버블 시기와도 다른 특징이다. 과거 버블이 정부 정책에 의지해 특정 국가나 산업에 집중했다면 최근 유동성은 전세계에 걸친 현상이라는 것. 특히 전세계의 대출 창구가 돼버린 일본의 엔 캐리 자금, 고유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동의 오일머니, 4년 연속 10%대 고성장을 이어 온 중국의 차이나머니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미 글로벌 유동성은 각국의 긴축 정책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금융 불안 위험도도 높아져=이는 뒤집어 말하면 금융 및 자산 시장의 불안요인을 개별 국가가 관리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앞으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엔화 강세, 신흥시장의 투자수익률 하락 등이 나타날 경우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신흥시장에 들어온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가 크고 해외자금 의존도가 높고 외채가 많은 동유럽 신흥시장국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국으로서도 올해 경상수지 적자가 유력시되고 자본수지는 늘고 있어 어느 정도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각국의 긴축 정책이 이어지고 과열된 자산 시장의 조정 압력이 높아지면서 소규모 금융 불안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라며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국제 금융시장의 근본적인 조정으로 일대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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