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혁명] 실물화폐사용 줄었지만 한국은행 역할 ‘더 커졌네’

흔히들 전자결제가 확산되고 전자화폐의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실물 화폐를 유통시키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위축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전자화폐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이며, 결제시스템을 감시ㆍ감독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중앙은행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첨단 결제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한국은행은 아직 다른 나라에 전례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시험하고 있다.

한은은 내부에 금융결제국을 두고 우리나라의 전자결제 산업의 기반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97년 은행공동의 전자화폐 표준을 제정했고, 2000년 개발된 전자화폐(K-Cash) 시범사업을 주도했다. 또 24시간 홈뱅킹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전자금융 공동망을 지난 2001년 4월에 개통해 인터넷 뱅킹 등 각종 금융업무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기도 했다.

강화중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한은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추진돼온 모든 금융결제 시스템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을 담당했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역할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은이 결제시스템의 지원자 역할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감시자로서의 기능이다. 지난 90년대 중반이후 전세계적으로 전자결제가 급격히 증가하자 국제결제은행(BIS)은 `급결제시스템에 대한 감시(Oversight)`를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규정했다.

지급결제 시스템이 원활한 작동하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들이 갑작스러운 신용위험과 유동성위험에 노출돼 결국 금융시스템 전체가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을 직접 감독하지는 않지만 이 금융기관들이 참여하는 결제 시스템의 구조적인 측면을 감시함으로써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이 같은 감시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두 가지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바로 지난달 통과된 개정 한국은행법과 곧 통과를 앞두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이 그것이다. 개정 한은법에서 한국은행은 각 전자결제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냈다. 실시간으로 각 금융기관과 관련 업체들의 전자결제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전자금융거래법에서는 전자화폐 발급시 현금과 똑같이 지급준비금을 한국은행에 쌓을 수 있도록 규정을 넣어 전자금융거래의 안정성이 한층 강화되도록 했다.

한국은행은 올 연말까지 국가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전자결제시스템을 선정해 본격적인 관리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재 이동통신사나 인터넷 사업자들이 하고 있는 각종 전자결제 시스템이 한국은행이 정한 `주요 전자결제 시스템`에 포함될 경우 이들 시스템은 적극적인 관리를 받게 될 뿐 아니라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보안성 등을 강화해야 한다.

강화중 국장은 “아직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이 우리나라 처럼 전자결제에 깊숙히 관여해 정책을 조율하는 곳이 없다”며 “한은이 전자결제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과 관련해 세계적인 표준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김인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