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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 2014] 2부. 낡은 관료시스템 , 국민의 위기다 <3> 이기주의에 물든 관가

"권한은 내것, 책임은 네탓" 보신·기득권 경쟁이 국정난맥 불러

사고나면 서로 미루기 급급… 힘든 부처 기피확산도 문제

인사고과에 성과주의 강화… 폐쇄적 임용제도 개선 필요



지난 2006년 사행성 성인오락인 '바다이야기'를 놓고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뜨거운 책임공방을 벌였다. 바다이야기가 대중적 도박 중독과 상품권 불법 유통 문제를 일으킨 것은 게임심의를 통과시킨 영상물등급위원회와 사후 단속 요청을 무시한 검찰ㆍ경찰의 탓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문화부는 오히려 영등위에 게임심의 기준 완화를 요청했음이 드러났다. 검찰 등에 요청했다는 단속공문도 상품권 불법 유통과는 관계가 없는 사안이었다.

'권한은 내 밥그릇, 책임은 네 밥그릇' 식 구태를 보여주는 관료집단의 단면이다. 보신문화와 기득권 욕심, 순혈주의와 폐쇄적 조직문화에 젖은 공무원들의 이 같은 행태는 무한 이기주의로 요약된다.

관료들의 무한 이기주의는 국정 난맥상을 초래한다. 전국민에게 비통을 안긴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를 놓고 주무 당국이 보여준 핑퐁게임이 대표적 사례다. 국가의 안전을 총괄한다던 안전행정부는 세월호 사고 직후 무능한 대처로 질타를 받게 되자 해양수산부에 언론 대응 등의 책임을 넘기며 무대의 전면에서 슬쩍 한발을 뺐다. 해수부는 은근히 뒤늦은 구조작업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의 화살이 해양경찰청으로 돌아가도록 비켜섰고 해경은 해수부에도 책임이 있다며 물고 늘어졌다. 해수부와 해경이 평소에는 바다의 안전업무를 놓고 서로 조직 불리기, 권한 늘리기 경쟁을 하더니 막상 사고가 터지고 나서는 책임 회피에 급급했던 셈이다.

2012년 저축은행사태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저축은행 부실 사태가 터지자 서로 책임공방을 하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모습이 지금의 해수부·해경과 오버랩된다. 한 전직 고위금융당국자는 "관료는 생리적으로 자신의 조직에 대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충성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밖에 대해서는 배타성이 강해 타 부처는 물론이고 같은 부처 내에서도 혈통이 다르면 견제하기 바쁜 습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런 순혈주의, 폐쇄적 문화가 혁파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정책실패에 따른 대형 인재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한이나 예산은 차치하고 기본적인 통계나 기초 정보마저 부처 간, 조직 간 이기주의에 막혀 있는 점도 문제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우리 사회는 점점 국민 간, 부문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있어 정책도 여러 부처가 협업해 입체적인 시각으로 수립해야 하지만 정작 기본적인 현황 파악을 위한 자료조차 각 부처가 공유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남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내 부처, 내 조직만 챙기고 보호하려는 이른바 크렘린 식 비밀주의 관행이 효율적 국정에 어떤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당장 이번 세월호 사고의 경우만 봐도 해경과 해수부의 해상관제시스템이 서로 진작에 연동돼 실시간으로 의사결정 협업과 정보교환이 가능했다면 보다 조기에 구조에 나서 인명을 많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해양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관료들의 보신주의·이기주의 관행이 단순히 일부 부처·조직·공무원의 수준을 떠나 전부처·조직·세대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은 보다 심각한 문제다. 새내기 사무관들이 힘든 업무를 맡는 부처나 조직은 점점 더 기피하고 개인적 안락을 추구하는 경향을 더 강하게 보이고 있다는 게 관가 안팎의 공통된 견해다. 국토교통부의 경우 물류정책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책임져야 할 대중교통과·물류산업과·자동차운영과 등은 직원들 사이에서 기피 부서로 낙인 찍혔다고 한다. 국토부의 한 간부는 이들 과에 대해 "화물노조와 같은 강성 노동조합을 상대하거나 버스·택시 등 민원과 해묵은 현안이 많은 일을 하는 조직이다 보니 지원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소연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업무가 빛나고 권한이 많은 주택국·도시국 등에는 국토부 내에서도 인재의 선호도가 높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안행부 역시 이번 세월호 사태로 한층 더 재난·안전 분야에 대한 우수 인재 기피 현상이 심해질 것 같다며 울상이다.

행정전문가들은 이 같은 관료들의 이기주의 행태를 깨기 위해서는 공무원 임용에서부터 보직 관리 등에 이르는 전과정을 손질하고 부처 밥그릇의 원천인 규제 권한을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재일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더 고된 일을 맡아 더 열심히 일한 공무원에게 더 많은 인센티브가 가도록 인사평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며 인사고과제도를 한층 성과주의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관료들의 이너서클, 조직 이기주의를 촉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행정고시 중심의 공무원 임용제도"라며 "폐쇄적인 임용제도를 보다 개방적으로 바꾸고 부처 간 성과 평가시에도 협업에 대한 가산점을 더 주는 식으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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