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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외환관리] <8> 절름발이 금융시장
입력2005-03-14 19:07:19
수정
2005.03.14 19:07:19
투기판 방물 금융시스템 개선시급<br>수출 일변도 환율정책 금융부문 약화시켜<br>MBS시장 활성화통해 장기채권 공급늘려야<br>'사모투자펀드' 설립 방안은 희망적 메시지
[기로에 선 외환관리] 절름발이 금융시장
투기판 방물 금융시스템 개선시급수출 일변도 환율정책 금융부문 약화시켜MBS시장 활성화통해 장기채권 공급늘려야'사모투자펀드' 설립 방안은 희망적 메시지
해외투기세력 규제 목소리 높다
“Get out of Korea, right now.(즉시 한국을 탈출하라)”
지난 97년 10월28일. 모건스탠리가 전세계 투자가들에게 긴급 타전한 전문은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아시아에 투자한 자금을 즉시 팔아치우고 빠져나오라는 신호였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분석으로 이름을 날렸던 모건스탠리의 보고서 때문이었을까. 이날 주가지수는 35포인트나 함몰하면서 500선 아래로 미끄러졌다. 한달 동안 1조원 넘는 외인 자금이 서울증시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달러가 귀해지자 800원대 후반이었던 원ㆍ달러 환율은 단번에 1,000원대로 치솟았다.
일주일 뒤인 11월5일. 외신은 ‘한국 외환보유고 위험수위’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의 외화 곳간에 20억달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톱뉴스로 타전했다. 수십억달러가 은행 부도를 막는 데 들어가면서 한국은 ‘기술적 부도(technical default)’ 상태에 빠졌고 얼마 후 IMF가 내민 동아줄에 매달려야 했다.
7년3개월 후인 2005년 2월22일. ‘통화다변화’라는 한국은행의 한쪽짜리 보고서로 촉발, 하강하기 시작한 환율은 전날보다 17원10전 떨어진 1,006원10전까지 내려앉았다. 환란 직전인 97년 11월17일(985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순간이었다.
2월 한달 동안 국내 증시로 밀려든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1조4,100억원. 주가는 단숨에 1,000포인트를 넘었다. 쏟아지는 달러에 환율은 연일 미끄럼을 탔다. 2,000억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고는 ‘그림의 떡’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시장의 추락을 견인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7년 전 그 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우리의 외환운용능력과 시장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한국의 수출 일변도의 고성장 전략과 환율정책이 상대적으로 금융 부문을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수출을 위해 환율을 무조건적으로 떠받치는 임기응변식 시장개입을 지속해왔다. 이런 동안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금융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는 정책목표는 항상 후선으로 밀렸다.
외환시장의 시스템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동안 외국인투자가들의 국내 금융시장 지배력은 더욱 비대해졌다. 우리나라 증시의 외국인 지분현황은 99년 18.4%, 87조5,530억원에서 지난해 말 현재 40.1%, 117조9,526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아시아 국가 중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을 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에서도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다. 거대 은행뿐만 아니라 우리의 핵심 금융ㆍ실물 주체들이 투기 외인 자본에 휘둘렸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합리적인 시장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직접투자가 아닌) 외인 자금이 과다하게 들어오면서 환율을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외환시장의 시스템을 보다 튼실하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투기가 판칠 수밖에 없는 현 금융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개선할 것을 주문한다. 외국인들의 투자를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시장의 여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상수지 흑자로 얻은 것을 담을 만한 상품이 없는데다 운용주체도 여전히 취약하다”며 “장기 국공채를 비롯, 주택채권담보부증권(MBS) 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안전성이 높은 장기채권 공급을 확대해야 된다”고 말했다. 장기투자상품이 나오지 않을 경우 외국인들도 부동산에 대한 투기성 투자에 매달리고 주식시장에 대한 투기심리도 줄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행인 것은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철환 재경부 국고국장은 “외국 투자가와 국내 기관투자가들에게 적절한 장기투자처를 보장하기 위해 현행 최장 10년으로 돼 있는 것을 15년ㆍ20년ㆍ30년물 등으로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해외 투기세력에 필적할 만한 ‘토종 싸움꾼’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외국계 펀드에 대응할 수 있는 국내 기관투자가나 금융기관들이 없다 보니 투기자금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사모투자펀드(PEF) 설립은 이런 면에서 우리 외환시장에도 미약하나마 ‘희망의 源가?甄? 한국을 ‘사냥감’으로 노리는 해외 세력들에게 ‘사냥꾼’으로 군림하기 위한 국내 자본의 반격을 기대해본다.
특별취재팀=김영기 기자 young@sed.co.kr
김민열 기자 mykim@sed.co.kr
현상경 기자 hsk@sed.co.kr
입력시간 : 2005-03-1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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