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면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는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용돌이 치고 있는 금융시장을 보면 마음이 급하다. 그는 증권사 대표 취임 2년차에 100년 만에 한번 올까말까 한 금융위기를 맞았다. 증권업계에 입문한 후 약 20년 동안 국제영업, IB업무, 기획 등 다양한 경험을 두루 쌓으며 꿈꿔왔던 '한국형 투자은행(IB)'에 대한 계획을 미처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맞았다고 움츠러들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후발 주자인 한국의 증권사에겐 기존의 판이 흔들리는 위기가 오히려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 IB들이 꽉 잡고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후발 주자가 자력으로 커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새 판이 형성되는 혼돈의 시기에는 노력 여하에 따라 비약이 가능하다. 그는 "한국의 금융 회사들은 IMF 이후 10년 동안 힘들게 해외진출의 기초를 닦아 왔지만 지금은 모두 주춤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는 또 다시 10년을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고 강조한다. 다른 증권사들이 비용 축소에 나서고 있지만 유 대표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글로벌 인재 영입과 해외 세일즈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과거에는 돈을 많이 준다 하더라도 스카우트하기 힘들었던 글로벌 IB의 고급 인력을 국내 증권사로 끌어 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와 같은 세계적인 IB의 리서치 및 영업, 자산운용 인력 영입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해외 진출 역시 물러섬 없이 진행중이다. "한국의 IB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내수시장 비율을 줄이고 세계로 진출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기 때문. 중국, 동남아시아 등 개발 가능성이 큰 곳에서는 투자중개와 직접 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일본, 중동 등 자금이 많은 곳에서는 자금을 끌어오는 게 바로 한국형 IB의 역할이다. 최근에는 이슬람 금융유치를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샤리아 율법 학자와 고문 계약까지 맺고 이슬람 채권 발행과 같은 이슬람 금융 조달을 추진중이다. 물론 쉽지 않다. 제도도, 영업 방식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방식을 답습해 성과를 내기보다는 새롭게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한국의 금융사들과 공유하는 인베스트먼트 뱅커가 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그는 특히 증권사의 수익구조 다변화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증시상황에 민감한 위탁매매(브로커리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증권사들도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산관리와 IB, 파생상품 분야의 매출을 꾸준히 늘려왔다. 이 같은 유대표의 노력은 실적으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취임한 이후 2007월4월~2008년3월말 한국투자증권의 영업수익(매출액)은 2조785억원으로 직전 해에 비해 60% 이상 올랐다. 영업이익은 2,304억원에서 3,256억원으로 40% 이상 늘었다. 리먼 사태가 터진 해(2008년4월~2009년3월)의 영업수익은 3조3,708억원으로 외형 성장세는 이어졌다. 그러나 리먼 관련 채권 손실(1295억원)을 일시에 손익에 반영해 영업이익이 1,353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한국증권의 수익구조가 기존의 위탁매매 영업에서 IB와 자산관리로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타 증권사의 경우 위탁 매매가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육박하지만, 한국증권의 경우 지난 회계년도 기준으로 위탁매매(1,893억원), 자산관리(1,452억원), IB(478억원) 등 부문별로 골고루 성과를 내고 있다.
"회사 생활이 즐거워야 성과도 극대화" 훤칠한 키에 호남 스타일인 유 사장은 '세심맨'으로 통한다. 디테일(detail)에 강해야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유 사장이 디테일의 힘을 깨달은 것은 영국에서의 글로벌 세일즈 경험을 통해서다. 90년대 초반 한국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영업하기 위해 평소 고집하던 한국 이름 대신 '제임스 유'라는 영어 이름을 썼다. 영국인들이 좋아하던 제임스 본드의 이름을 딴 것. 사무실 전화번호 끝자리도 '007'로 바꿨다. 그는 당시 전세계 증권사의 한국 주식 영업담당 세일즈맨 중 최고의 실적을 올려 외국인 투자가들이 '레전더리 제임스'(전설적인 제임스)라는 애칭을 붙여줄 정도였다. 유 사장의 경영철학은 '행복경영'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 업무는 스트레스의 연속일 수 밖에 없지만, '최고의 인재 - 최고의 대우- 최고의 성과'라는 선순환을 통해 회사 생활이 즐거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유 사장은 직원들과의 '강한 스킨십'으로 정평이 나있다. 부서 회식에도 격이 없이 참가해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가 하면, 지방 영업점에서 SOS를 치면 언제든지 달려가 해결사 역할을 한다. 그가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으로 이직하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2002년 초 김남구 부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 근무회사의 적극적인 만류로 이직을 포기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이 6개월간 후임자를 구하지 않고 기다려 준 배려에 감동해 그해 10월 자리를 옮겼다. He is 유 대표는 196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부속 고등학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85년 한일은행에 입사, 금융계에 첫발을 디뎠다.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금융을 배우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한 채 훌쩍 미국 유학을 떠났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MBA를 취득하고 88년 대우증권 국제부로 들어와 대우증권 런던 현지법인 부사장등을 역임했다. 99년에는 메리츠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전략사업본부장과 기획재경본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경영인의 길로 들어섰다. 2002년에는 동원증권으로 이직해 기관영업(Wholesale) 본부장 겸 IB본부장으로 일했다. 이후 본사 영업, 기획담당 부사장을 거쳐 2007년 3월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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