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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시중에 내놓는 등산용 기능성 긴팔 셔츠(남성용) 한 장은 한 마당 5,000원인 원단 7,000원어치면 만들 수 있습니다. 봉제나 물류비ㆍ인건비를 다 합쳐도 1만원선이면 만들고도 남지요."
수십 년간 국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 원단을 납품해온 A사 김우주(가명)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거품이 잔뜩 낀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김 대표는 "등산복 바지도 한 벌당 원단 값은 5,000원, 많이 써도 7,000원 정도로 공임까지 쳐도 1만5,000원 정도면 생산비 원가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말대로라면 브랜드 마케팅과 재고ㆍ판매관리비용 등 제반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주요 브랜드 기준으로 남성 상의 8~13만원대, 하의 10~19만원대에 형성된 아웃도어 제품의 판매가격(정상가)은 생산 원가의 10배 전후라는 계산이 나온다. 김 대표는 "톱모델을 써야 제품이 잘 팔리니까 브랜드들이 생산비의 수십 배를 마케팅이나 광고비에 쏟아붓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본격적인 나들이철을 맞아 가정의 달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웃도어 제품에 가격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올해 6조원이 넘는 규모로 급팽창하고 있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최근 아웃도어 제품의 가격거품을 빼기 위해 조사에 나서고 있어 아웃도어 가격 변화에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은 기능성 원단을 사용한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지만 이 정도 가격 수준의 원단이라면 일반 패션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합성섬유 원단과 가격에 별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성복ㆍ남성복을 취급하는 B사 관계자는 "합성섬유로 만드는 남성 긴팔 셔츠는 한 마당 5,000~6,000원이면 된다"며 "흡습ㆍ속건 기능이 매우 뛰어난 원단은 가격이 좀 더 비쌀 수 있겠지만 몇 배씩 차이 날 수는 없다"고 귀띔했다.
다만 미국 수입 원단이자 기능성 소재의 대표격인 고어텍스는 한 마당 2만~2만5,000원선으로 타 원단에 비해 4~5배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고어텍스 제품은 원단이 비싼 만큼 소비자가격도 높게 책정된다. 브랜드별로 차이는 있지만 고어텍스 재킷은 사용된 원단 레벨에 따라 최소 3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대에 이른다. 옷을 짓는 데 들어가는 원단 사용량을 감안하면 최소 10배에서 최대 40배까지 가격이 비싸지는 셈이다. 고어텍스 측은 원단 가격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자 "브랜드 정책상 원단 가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 C사 관계자는 "아웃도어 제품 원단의 평균 가격대를 그 정도(5,000원)라고 싸잡아 얘기할 수는 없다"며 "원단 종류가 수백 가지가 넘는데 비싼 것도, 싼 것도 있는 것 아니냐. 고가 제품은 그런 값싼 원단을 쓰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비싼 원단을 사용한다고 해서 기능이 정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원단업체 관계자 최모씨는 "브랜드 구매책임자(MD)들의 횡포"라고 표현하며 국산 기능성 원단이 찬밥 취급당하는 현실에 불만을 토로했다. 최씨는 "우리 회사가 국내 1위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스페이스에 원단을 납품하려고 수차례 애썼지만 고어텍스나 쿨맥스 등 기존 원단 벤더들이 꽉 잡고 있는 탓에 도저히 뚫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 원단은 모두 수입산이다. 노스페이스 측은 한국에서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거래해 온 곳들 외에 다른 (원단) 업체와 계약하기 어렵다며 최씨에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원단 구매선이 특정 업체에 쏠리는 것은 비단 노스페이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고어코리아의 원단 공급 정책에 따라 고어텍스를 사용할 수 없는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오히려 국산 원단보다 일본ㆍ미국 등지의 수입 원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고어텍스를 쓰지 못한 곳들은 엔트란트나 이벤트ㆍ말덴 등 수입 원단을 사용하면 자사 브랜드가 레벨업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국내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격을 마구잡이로 깎고 들어오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조대현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연구개발본부장은 "(고어텍스나 쿨맥스 등) 일부 특수 원단 분야에서 국내 업체들이 기술력의 강점을 드러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마케팅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수입 원단의 네임밸류를 따라잡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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