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울경제연구소 시사진단] 재벌의지배구조 개선방안
입력2003-02-20 00:00:00
수정
2003.02.20 00:00:00
이번 좌담회에서는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이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특히 최근 SK그룹에 대한 압수수색과 같은 전격적인 조치는 개혁에 대한 불안 가능성을 높이고 현대 대북송금과 관련, 형평성 문제를 낳아 오히려 개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나왔다.
신정부의 재벌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과거 정권들처럼 캠페인성이나 손보기식의 접근으로는 다시 실패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는 점과 정부와 재계가 신뢰하는 가운데 개혁이 추진돼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정희수 서울경제연구소장= 새정부가 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출자총액제도 강화 등 개혁과제를 내세우며 강도 높은 개혁의지를 보이고 있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 정책의 속도와 폭이 기업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검찰이 SK그룹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전격적으로 실시해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바람직한 재벌 개혁방향은 무엇인지.
▲권영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협의회 의장(경희대 국제경제학부 교수)=실제로국민정서상 재벌에 대한 애증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새정부가 추진과제로 내세운 금융기관 계열분리청구제는 선언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실제로 도입하기는 어렵다. 금융기관을 분리해 매각에 나설 경우 이를 살만한 능력을 가진 곳이 별로 없다. 최후 수단으로 적용할 제도를 성급하게 도입하기 보다는 차분하게 개혁의 우선순위를 고려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에 대해 의견도 분분하다. 우선 중점적으로 감안해야 하는 것이 조세제도에 대한 포괄주의 정신이다.
상속증여의 경우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현행 조세관련 법률에 들어있는 조세 대상을 포괄적으로 넓혀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세기관이 징수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출자총액제한제도 강화도 현재 예외조항이 많아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투명화, 소액주주 감시가 철저히 이뤄진다면 언제든 폐지해도 된다. 출자제한 방식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잘 되고 있는 기업은 출자제한을 완화하여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선별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잘 안되고 있는 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기 위해 전체 기업에 대해 일률적으로 규제해서는 곤란하다.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이사 선임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외이사가 기업의 투명경영을 위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견제와 균형을 갖추면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상당히 해소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도입하려는 증권거래 집단소송제는 선진국에서도 문제가 된 사례가 있어 조심스런 접근이 요구된다. 소액주주나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집단소송제 도입을 환영하고 있으나 자칫 소송 남발로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이 저해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남소가능성을 막은 후에 도입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지금도 과연 재벌이 대대적인 개혁의 대상이 될 정도로 뒤쳐져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재벌이 현재 과거와 달리 많이 변했다. 재벌의 폐해로 상징되는 정경유착 관행도 확실히 개선되었다. 최근에 정경유착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될만한 것이 별로 없다. 재벌 개혁을 과거의 부정적인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경영에 대한 우려도 별로 심각하지 않다. 현재 예금보험공사에는 과거와 같다면 살만한 회사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기업 확장에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들의 매수 의지가 없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기업이 사업체를 인수하려고 해도 금융기관의 견제가 상당하다. 확실한 사업능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문어발이든 지네발이든 사업확대가 가능해야 한다. 재벌도 지난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생존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고 있다. 무분별한 확장은 사라졌다. 30대 그룹의 경우 경제위기 동안 10개 이상 퇴출되었다.
물론 재벌의 과잉투자가 IMF 경제위기의 주된 요인이었던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재벌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 재벌에게 자금을 댄 금융권과 이를 감독해야 할 기관들도 동시에 책임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재계는 현재 갈등보다 절충안을 찾고 있다. 집단소송제도 남소를 방지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수용하기로 재계는 합의했다. 소송의 경우 공정위, 법원의 행정조치나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에 한해서 허용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기업이 경영에 실패하여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형사처벌과 피해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시민단체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한다.
▲권 의장=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의 기소단계에서 집단소송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동의한다. 재계도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회장=상속증여세도 세율이 너무 높다는 점을 시정하면 문제 해결이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재벌들의 경우, 상속증여세가 50~60%에 달한다. 세율을 낮춘다면 세원 증가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만 하다.
▲권 의장=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경우 세율을 낮추자는 박 회장의 의견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중산층에 대해서도 공제액수를 확대해 세율을 낮추는 한편 세금을 내지 않는 대상을 찾아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는 방안에 찬성한다.
▲박 회장=출자총액제한도 부가가치 발생 여부를 생각해야 한다. 같은 금액이라도 기업의 부동산 구입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 반면, 기업을 사들일 경우에는 상당한 규제를 받게 된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 국가 경제로 보면 기업의 부동산 구입보다 기업 운영이 고용창출에 기여한다. 세계적인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은 발전사업에서 방송사업에까지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미국식 문어발 경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금융기관 계열분리제도도 이미 금융감독원 등 감시기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로 도입한다면 이중삼중의 규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권 의장=출자총액제한제도는 예외조항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결론적으로 장기적인 차원에서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면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필요 없다.
▲박 회장=집중투표제 역시 도입안에 따르면 기업이 최소한 70%가 넘는 지분을 가져야 경영안정을 가질 수 있는 실정이다. 백화점식 규제로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 인위적인 방법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 소액주주들과 애널리스트들이 시장에서 기업 운영에 대해 제목소리를 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재벌은 한국경제를 부흥시킨 주인공이지만 위기를 초래한 주역이기도 하다.
재벌과 정부가 합의하여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는 법적인 강제보다는 부의 무상이전을 과세대상으로 삼는 수준에서 도입하면 된다. 현행 출자총액제한은 너무 느슨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구조조정, 계열전문화와 관련된 상황을 제외하고 출자총액 제한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금융기관 계열분리청구제와 집중투표제 역시 전향적인 수용이 필요하다.
재계가 개혁방안에 대해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대신 정부와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는 접근방식이 요구된다.
정부도 국민감정을 고려한 파괴적인 개혁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개혁과 파괴는 달라야 한다. 재벌구조의 긍정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대기업의 탄생으로 접근해야 가야 한다.
정부도 최근 SK그룹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하는 등 전광석화와 같은 규제 행동을 보이기 보다 법ㆍ제도 등 객관적 기준으로 풀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권 의장=본질적인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선진국형 이사회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사외이사들이 오너와 친분관계가 있거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어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박 회장=이사회제도가 잘 발달한 미국에서도 사외이사는 최고경영자가 선정하고 있다. 투명경영과 효율경영의 상징인 GE 역시 사외이사를 경영자가 주로 선정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사외이사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이미 기업 운영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 소장=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금감원, 공정위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들의 투자는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래야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재벌 규제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따라서 보다 넓은 글로벌 시각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국내 기업들이 하향 평준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교수=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경우가 최근 발생했다. 대북송금과 관련해 현대상선의 경우가 그것이다. 시장이 아직 만족스런 자율 기능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 도입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규제 강화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유인하는 제도적 보완을 마련하면서 나가야 한다. 너무 일률적인 규제는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법ㆍ제도 도입에 있어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보완해야 할 시기다.
▲박 회장=법과 제도의 정비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각종 규제를 도입하여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기업은 제도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은 투자 시기가 특히 중요하며 이를 놓치면 따라잡기 힘들다.
▲권 의장=국내 기업들 가운데서도 유한킴벌리와 같이 선진국형 기업지배구조를 갖춘 기업들이 있다. 유한일 박사는 자손에게 경영권을 넘기지 않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성장하도록 했다. 이런 기업지배구조를 벤치마킹 한다면 우리 재벌들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금융계열사 분리 문제의 경우 금융산업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정 소장=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우리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이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기업지배구조 방식이 선진형이라고 무조건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영화감독 임권택씨가 말한 것처럼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예를 든다면 국내 기업의 경우 민영화된 포스코나 삼성전자가 그 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권 의장=포스코의 경우 사외이사 선임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편에 속한다. 물론 한국형 기업지배구조 구축의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세습경영 방식에 대해서는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박 회장=기업지배구조 개선 방안에는 정답은 없다. 제도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시각도 필요하다.
▲권 의장=기업지배구조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단 무엇보다 투명성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아울러 견제와 균형이 전제돼야 한다
▲이 교수=미국을 조건없이 본받아야 하는 벤치마킹 대상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름대로 장점과 경쟁력 있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상황에서 제도 도입은 최소한의 규제로 제한하고 국민 경제에 해악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정 소장=신정부 출범과 함께 강도 높은 재벌개혁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가 클 지 궁금하다.
▲권 의장=검찰이 SK 그룹에 대해 기습 수사를 벌이는 것은 지난 5년 동안 보지 못했던 매우 강도 높은 조치이다. 검찰의 이런 초강수와 관련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전혀 모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재벌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새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한 반발을 사전에 무마하려는 메시지가 포함되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대북송금과 관련된 현대그룹은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SK그룹에 대한 접근만은 문제다. 결국 재벌들이 스스로 신뢰 받는 자발적인 개혁을 추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정부도 정치적 판단을 제외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 교수=최근의 재벌 수사방침은 자칫하면 파괴적이 될 수 있다. 재벌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 커다란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힘의 논리를 지나치게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실제로 과거 역대 정권의 실정은 힘의 논리에 의존한 탓이다. 우선 손부터 보자, 길들이자 라는 식의 접근에서 비롯되었다. 북핵문제, 이라크전 발발 가능성 등으로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개혁이 지나치면 우리 기업들이 중국,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해 산업 공동화 우려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원칙에 입각한 재벌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력을 찾는 플러스 섬 게임으로 가야 하며 발전적인 여건을 조성하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
재벌개혁 뿐 아니라 정치권과 관료 개혁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을 키우려면 정부, 정치권 등 모두가 개혁 의지를 가져야 한다.
▲박 회장=국민의 정부에서 기업개혁과 금융개혁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이제 남은 것은 노사부문과 공공부문의 개혁이다. 우리나라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이들 부문의 개혁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개혁의 추진도 캠페인성이 아니라, 차분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부가가치를 키우고 경쟁력을 높이는 개혁이 요구된다.
▲정 소장=글로벌 경쟁 환경의 변화를 감안해야 한다. 신뢰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를 조성하고 견제와 균형 관행이 정착되어야 하며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개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정치적 업적이나 국민감정에 지나치게 부합하는 개혁은 자칫 파괴적일 수 있다.
전향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기다.
<정리=최인철기자 michel@sed.co.kr>
오늘의 핫토픽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