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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의 사고방식
입력2004-03-23 00:00:00
수정
2004.03.23 00:00:00
대학에 다닐 때 마케팅 수업 중 글로벌 기업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담당 교수는 과연 100% 글로벌 상품과 회사가 존재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맥도널드가 쇠고기를 못 먹는 이슬람권에서 잘 팔리지 않고, 면도기를 만드는 질레트 사의 제품이 자연미를 존중하는 유럽 여성들에게 그다지 애용되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문화를 초월하는 순수 글로벌 제품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글로벌한 상품으로 코카콜라를 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위 글로벌화를 자칭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도 차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수만 가지의 부품을 전 세계에서 납품받고, 해외 공장 건설을 통해 현지의 저렴한 노동비로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추세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앨라배마 주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것도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국내의 고임금과 노사 문제, 그리고 우리 산업의 양극화 현상에 따라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조업들이 여건이 훨씬 좋은 중국 등으로 빠져 나가는 것은 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또한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발벗고 경제 외교를 벌이고 있다.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아일랜드, 동유럽 국가 등이 정부 차원에서 외국 투자 기업에 막대한 지원과 혜택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적자원이나 지리적 기후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외자유치 실적이 매년 급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을 동북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하는 정부 사업에 대해 외국인들의 반응은 왜 냉담한 것일까?
우선 외국 기업들이 국내의 과격한 노사문화에 가장 부담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그만큼 국제 언론에 비치는 우리의 폭력시위는 외국인들의 머리 속에 부정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또 복잡하고 불투명한 행정 규제도 걸림돌이 된다. 아일랜드의 경우 외국회사 임직원들의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모든 보조를 정부에서 제공해 준다고 한다.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해 주기도 하고, 도로나 사회 기반 시설까지 정부에서 지원을 해 준다. 이러한 외자 유치로 많은 일자리와 국가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외자 유치는 국민적인 의식 부족과 무관심 속에 갈수록 실적이 감소하는 추세이다.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에 관한 산업자원부 자료를 보면 2002년보다 29% 감소했고, 2001년과 비교하면 무려 57%나 감소했다고 한다.
실제 내 경험에 의하면 어느 지역에 투자 의사를 밝혔으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무리한 사업 비용을 부담시켜 외국인 투자 자체를 아예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지자체도 있었다. 과거 외환사태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여 한 푼의 외화를 벌기 위해 보여 주었던 우리 국민의 단결심과 위기 의식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실제로 까르푸는 1996년부터 매년 평균 2,000억원 이상 총 1조5,000억원을 국내에 투자했고 프랑스에는 단 한 푼도 송금해본 적이 없다. 현재 6,300명 이상의 직원 중 99.6%가 한국인 직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매년 300억원 이상의 세금을 정부에 납부하고 있다. 외자 유치를 통한 경제적 파급 효과는 이러한 예를 보더라도 상상을 초월한다.
국민 의식이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글로벌 기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기업 제품을 구입하고 애용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품질, 가격, 기술, 서비스, 디자인 등 선의의 경쟁이 아닌 단순히 기업의 국적에 따라 소비자가 구매를 하는 것이 과연 그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까? 글로벌 기업이 국내에 투자해서 사업을 하면 그 기업은 국내 기업과 다를 게 없다. 외국 기업이 투자해서 만든 공장과 매장은 영구히 한국에 남아 생산과 판매의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때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 뉴욕, 하와이, 캘리포니아의 많은 부동산을 사들이자 미국의 대다수 보수층은 “일본이 미국을 정복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결국 그 투자는 미국 경제를 도와 주었고 그 부동산 또한 미국에 영구히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 아메리카`는 한국 회사보다는 미국 회사로 봐야 하고, 한국까르푸㈜는 프랑스 회사보다는 한국 회사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글로벌 시대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사고방식이다.
불행한 것은, 경쟁하는 `토종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에 맞서서 `우리 것`을 애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무엇이 `우리 것`이고 무엇이 `남의 것`이란 말인가? 이런 안티 글로벌 마케팅은 결코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향해야 할 사고 방식이 아니다. 이제는 글로벌 기업과 토종 기업들간의 경쟁 시대가 아니다. 기업의 국적을 떠나, 국민 경제에 궁극적으로 기여하는 기업이 진정으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수출에 의존해야만 하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의 특성상, 글로벌화(globalization)는 우리가 나가야 할 유일한 생존전략이자 미래의 청사진이다. 하지만 외국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는 글로벌 기업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기업이 글로벌 기업에 걸맞게 마인드를 개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영어를 유창하게 해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과 가까워질 수 없듯이, 글로벌화도 더 폭 넓은 시야를 가지고 외국의 문화를 수용할 수 있을 때 더욱 빛이 나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고승태 (한국까르푸㈜ 홍보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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