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승언(가명)씨는 출근길에 친구의 돌찬치 소식이 떠올라 카카오톡으로 10만원을 송금했다. 점심시간에는 근거리무선통신(NFC) 단말기가 설치된 식당에서 휴대폰을 갖다대 점심값을 결제했다.
집에 돌아온 이 씨는 휴대폰에 등록된 은행계좌로 펀드에 가입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전통적인 은행 산업의 축은 '지점'이고, 사람이었다. 통신 산업의 발전에서 비롯된 모바일뱅킹은 그 틀을 흔들었다. 금융과 통신의 컨버전스(융합)는 지점의 역할을 축소시켰고 급기야 한국씨티은행처럼 대규모 지점 폐쇄가 현실로 다가왔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이런 모습에 서곡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카카오톡이 메시지 형태로 현금을 송금하는 것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정통 뱅킹 모델을 뒤바꾸고 지점 자체가 없는 은행이 탄생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은행은 결국 지극히 소규모의 '진성 고객'을 대상으로 최첨단의 자산관리 서비스만을 수행하고 모든 기능을 본점이 허브가 돼서 수행하는 시대가 곧 온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장은 이런 점에서 미래의 은행 형태가 3가지 단계를 거쳐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지점의 역할이 바뀌고 이후 지점의 형태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형태로 변한 뒤 고객들이 여기에 적응하면 은행 자체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등에 업고 하루 최대 10만원까지 송금할 수 있도록 한 뱅크월렛카카오 서비스가 출시되는 다음달은 이런 점에서 금융과 IT가 뒤섞인 '융합형 뱅킹'의 또 다른 시발점이다.
하지만 융합형 뱅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다. 바로 보안 문제다.
카카오톡과의 제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금융결제원은 다른 업무에 비해 보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카드 정보 유출 사태 이후 신뢰를 잃은 카드사들로부터 수많은 고객들이 등을 돌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보안에 조금만 구멍이 생겨도 금융 산업의 핵심인 신뢰는 한순간에 날아가고 진화된 뱅킹 모델 역시 처절하게 난도질당할 수밖에 없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메시지를 통해 돈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해킹·보이스피싱 등 범죄가 일어나면 금융계와 카카오톡 모두 치명타를 입게 된다"면서 "카카오톡을 이용한 금융결제 사업 성공의 관건은 보안"이라고 강조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도 분명하게 해야만 한다는 평가다. 하나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은 보안상 문제가 터졌을 때 누가 책임질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카카오톡과의 제휴사업에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련의 금융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융합형 뱅킹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국내에는 금융실명제의 본인 확인 의무가 있어 예·적금 가입, 방카슈랑스·펀드 판매, 자금대출 등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점을 방문하거나 은행 직원을 만나야만 한다. 역으로 이 문제만 해결되는 지점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고 지점 자체가 없는 '인터넷 뱅크'도 생길 수 있다.
중국 알리바바의 경우 이체·송금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 쇼핑몰 결제, 심지어는 머니마켓 투자까지 가능하게 했다. 금융실명제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실명확인 절차가 유연하게 변해야만 알리바바처럼 사업영역 확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융합형 뱅킹은 말 그대로 은행과 IT가 합쳐진다는 의미인 만큼 완전히 시중은행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스마트뱅킹 거래의 90% 정도가 조회이체 서비스지만 실제 예·적금을 새로 가입하는 등 계정을 움직이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면서 "지점을 찾아야만 하는 필수 업무들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지점이 아예 없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송금 및 증여에 활용되는 방안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평가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부실장은 "은행 거래에서는 이체를 하면 누구한테 돈이 오고 갔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카카오톡을 이용한 송금은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불법 송금, 탈세 등에 관한 규정들을 당국이 준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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