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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의 시차를 두고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부총리가 '엔화약세'를 경고했다. 이례적이었다. 물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모두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QE)를 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일본의 추가 QE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2·4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7.1%인데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1.3% 수준인 일본의 소비자물가(CPI)가 2%가 될 때까지 (엔화를) 찍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시장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고 엔·달러 환율은 두 달 사이 무려 7% 넘게 올라 주요 통화 중 상승폭이 가장 컸다. 원·엔 환율은 지난 8월13일 100엔당 1,000원을 깨더니 40일 가까이 900원대를 유지하며 900원 초반마저 위협하고 있다. 더욱이 달러강세로 일본 엔화가치는 추가 하락마저 예상돼 '엔저'가 국내 경제에 다시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라는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됐다.
엔저에 대한 대책은 세우고 있을까. 아직은 경고만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원·엔 거래시장이 없어 정부가 직접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원·달러 등의 움직임을 쫓으며 예의주시할 뿐"이라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원·엔 시장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등만 쳐다봐야 하는 천수답 시장이라는 얘기다. 엔저 대응은 기업들의 몫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는 "대기업은 별로 영향이 없고 중소기업이 문제"라면서도 "중기는 환변동보험이 있지만 일차적으로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환차손을 줄이기 위한 환변동보험을 확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환변동보험 인수규모를 늘렸는데 환변동보험 장치를 더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해 1조7,000억원이던 환변동보험을 올해 8,000억원 추가해 2조5,000억원으로 늘렸다.
그렇다면 엔저가 정부의 분석대로 중소기업만의 문제일까. 무역협회 등의 분석은 다르다. 일본과의 전체 품목 수출경합도는 지난해 기준 0.5다. 0.5를 넘어서기는 처음인데 1에 가까울수록 경쟁이 치열하다. 업종을 보면 자동차는 수출경합도가 0.71에 달했고 자동차부품은 2007년 0.39에서 지난해에는 0.56에 이르렀다. 엔저의 여파는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빅3의 2·4분기 영업이익은 4~13%(전년동기 대비) 늘어난 반면 현대·기아자동차는 같은 기간 13~32%가 줄었다. 채희근 현대증권 연구원은 "엔저의 영향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가 크게 받을 것"이라면서 "현대차와 경합하는 도요타의 주력품목은 일본 현지생산을 통해 공급하는데 고급차종은 엔저로 가격경쟁력에서 뒤져 고급화 전략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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