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길'과 '이기는 길'은 비슷한 뜻처럼 보이지만 동어의가 아니다. 프로기사들은 늘 이것을 생각한다. 이기기를 누구나 원하지만 때때로 바둑판은 너무도 넓고 막막해 보여 마치 사막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어렵다. 그럴 때 프로기사는 지지 않는 길을 먼저 생각한다. 그 길은 이기는 길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축구의 수비수가 페널티킥을 각오하고 위험지역에서 태클을 시도하는 것과도 통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무조건 골인이라고 생각될 때 수비수는 앞뒤를 재지 않고 몸을 던진다. 껴안기도 하고 걷어차기도 한다. 골인만은 용납하지 않는다. 강동윤의 백80은 인내의 수순이다. 대세점은 참고도1의 백1이며 그곳은 이른바 쟁탈의 급소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곳에 두면 흑은 무조건 2에 젖힐 것이다. 그 코스는 지는 코스라는 것을 강동윤은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몸살이 날 정도로 탐나는 백1을 두지 못하고 18급 하수처럼 순순히 백80에 둔 것이다. 흑81은 진작부터 두려고 했던 자리. 여기서 강동윤이 묘한 곳을 짚었다. 백82로 응수를 타진한 이 수순. 타이밍이 절묘했다. 참고도2의 흑1에 받으면 무조건 백2, 4로 끊을 작정이다. 이세돌은 잠깐 망설였다. 끊겨주고 싸우는 방법도 있을 듯한데 자신이 없다. 결국 슬그머니 흑83으로 물러섰다. 백84에 또 흑85로 물러섰다. 최대한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나서 비로소 백86에 지켰다. 공격적 착상이 빛난 장면이었다. 하수들이여. 공격부터 생각할 일이다. 공격적 착상부터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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