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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텔과 밴더빌트
입력2003-10-29 00:00:00
수정
2003.10.29 00:00:00
미국의 갑부들 가운데 상당수는 철도사업에서 떼돈을 벌어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이라크 복구사업을 주도하는 벡텔(Bechtel)이 대표적인 사례다. 창업자 워렌 벡텔은 미국 태평양연안지역의 철도사업을 계기로 사세를 확장했다. 그 후 벡텔은 후버댐 프로젝트 등 굵직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업체로 떠올랐다.
재미있는 것은 벡텔이 전형적인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라는 사실이다. 현재 회장은 릴리 벡텔. 그는 창업자 워렌 벡텔의 증손자다. 벡텔가문은 4대째 경영을 대물림하고 있다. 패밀리 비즈니스라고는 하지만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하며 회사를 이끌어 나가는 탓에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벡텔 가문에 비길 정도는 아니지만 밴더빌트(Vanderbilt)가문도 한 때는 아주 잘 나갔던 갑부였다. 밴더빌트가문은 노예상에서 출발해 돈을 모은 후 철도사업을 통해 발딱 일어섰다. 특히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 사업을 확장한 탓에 `악덕자본가`라는 딱지를 달고 다녔다. 그의 유일한 선행은 100만달러의 밴더빌트대학 설립자금을 대준 것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밴더빌트가문의 쇠락은 노스 캐롤라이나 애쉬빌에 있는 `빌트모아하우스`에서도 잘 드러난다. 빌트모아하우스는 밴더빌트 집안의 저택이었다. 말이 집(하우스)이지 우리로 치면 에버랜드같은 위락시설과 함께 와인양조장 등을 갖춘 종합리조트다. 하지만 막대한 운영자금과 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땅의 일부는 지자체에 매각했고 지금은 밴더빌트가문의 장손이 기념품상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벡텔과 함께 밴더빌트같은 사례가 자주 나와야 한다. 경영능력이 인정된다면 창업자의 증손자가 아니라 10대손이 경영자가 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상속세나 증여세는 철저하게 물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막대한 부(富)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틈만 나면 지배구조에 대해 이런저런 희망사항(?)을 밝힌다. 물론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지배구조를 강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판이 시시콜콜 호루라기를 불면 게임은 엉망이 될 수 있다. 공정성과 함께 효율성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게임이 유지될 수 있다.
<정문재(경제부 차장) timot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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