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EU의 경제ㆍ사회ㆍ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보고서가 다음달 초안이 나올 예정이어서 양측 간 협상에 미칠 파장이 주목되고 있다. EU 측이 IBM에 용역을 의뢰한 이 보고서는 내년 2월에나 최종본이 제출될 예정이어서 한ㆍEU FTA 협상도 그때까지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한ㆍEU FTA가 EU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미칠 긍정적ㆍ부정적 영향을 모두 포함할 것으로 알려져 분석 내용에 따라 EU 측 협상단이 협상전략을 일부 수정할 수도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면 우리 협상단은 한미 FTA에 이어 EU와의 FTA에서도 수출 증대효과 등 ‘경제성’에 치중한 일부 정부 출연연구기관 보고서에만 의존하고 있어 대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FTA 효과를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연계하는 전략적 접근이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향후 중국과의 FTA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EU를 적극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U, 내년 2월까지 3차례 보고서 확보=2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국 측과 FTA 협상을 벌이고 있는 EU 측 협상단과 EU 통상총국(DG Trade)에 따르면 EU는 다음달 말께 한ㆍEU FTA 영향을 분석한 SIA(Sustainability Impact Assessmentㆍ지속가능성 영향평가) 보고서 초안(draft)을 IBM사로부터 받아 내용분석에 들어갈 계획이다. SIA 보고서는 FTA 체결로 EU 회원국이 겪게 될 경제ㆍ사회ㆍ환경 등 3개 분야의 변화를 ‘지속가능성’의 틀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예컨대 환경 분야에서 한국과 FTA가 EU 내 온실가스 규제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지 등을 세밀하게 담게 된다. EU는 멕시코ㆍ칠레ㆍ남아공 등 과거 EU와 FTA를 체결한 국가들과의 협상에서도 사전에 의무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왔다. 하지만 한국과 FTA의 경우 지난 상반기에 협상 개시 논의가 갑자기 급물살을 타면서 보고서 없이 먼저 협상부터 하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는 게 협상장 안팎의 전언이다. SIA 보고서 업무에 관여하고 있는 유럽 내 한 현지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봐야 알겠지만 통상 SIA 보고서는 EU 회원국들에 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 FTA 체결에 따른 최적의 지속가능 산출물을 얻기 위한 내용들로 구성돼왔다”고 전했다. EU 통상총국(DG Trade)에 따르면 IBM 보고서는 다음달 초안이 제출된 후 IBM 측으로부터 내년 1월에 중간(interim) 보고서가, 마지막인 2월에는 최종(final) 보고서가 도착할 예정이다. ◇보고서 내용, EU 측 협상전략 수정 여부 주목=내년 2월에나 EU가 최종 보고서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 간 협상도 지연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참고자료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EU 협상단 입장에서는 급하게 협상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적다는 의미다. 더 중요한 건 SIA 보고서에 ‘어떤 내용이 실리느냐’이다. EU 협상단이 간과했던 이슈가 보고서에서 제기될 경우 EU 측도 기존 협상전략을 일정 부분 조정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보고서 내용이 실제 협상 테이블에 반영되는 방식은 당사자인 EU 측만이 아는 만큼 구체적인 사후 협상 영향도를 파악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때문에 우리 측 협상단의 한 핵심 실무자는 “EU가 SIA 보고서 작성에 착수한 사실은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SIA 보고서가 협상의 전체적 방향에 변화를 줄 만큼 중요한 보고서가 아닐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관련 유럽 현지 민간 전문가는 “미리부터 한국 정부가 보고서의 의미를 축소하기보다는 내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특히 한국 정부가 EU와의 협상에서 오히려 유리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속가능성 부재 한국 협상전략 비판=뿐만 아니라 FTA에 지속가능성 개념을 도입한 EU의 협상전략에도 우리 정부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라는 정부 출연연구기관 한 곳에 FTA 연구분석 의뢰가 집중되는 한국과 달리 EU는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문 능력을 갖춘 민간기업에 과감히 분석을 의뢰하고 있다는 것. 특히 전세계 어느 지역보다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관련 쟁점을 1%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IBM이라는 민간기업을 활용하는 EU의 치밀함은 놀라울 정도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평가다. 유럽 내 환경규제 법률자문펌인 ‘엔헤사(Enhesa)’사의 박대영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일부 기관에 FTA의 영향을 한마디씩 말해보라는 식으로 분석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EU의 SIA 보고서는 EU 회원국들이 FTA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준다”며 “이런 의미에서 SIA 보고서는 경제효과 분석에만 머물고 있는 국내 보고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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