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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웅 휴먼칼럼] 클린턴 대통령의 ‘아멘!’
입력1999-03-31 00:00:00
수정
1999.03.31 00:00:00
어느 군대가 탁월한가는 그 치밀함에 달려 있다. 4년전 보스니아 내전때 일이다. 미군 전투기 조종사 오글래디 대위가 세르비아군의 대공포격을 받고 추락, 보스니아 숲속에서 숨어 지낸다. 그는 만 엿새 동안 빗물을 받아 식수로 쓰고 검은 개미를 잡아 식량으로 대신한다. 그의 전투조종복 주머니에 든 조종사의 비상수칙에는 낙하산 탈출후 보스니아 숲속에서 견딜 수 있는 비장의 생존방법이 번호순으로 적혀 있었다. 보스니아 숲속에서 흔히 자라는 풀과 열매의 이름, 날로 먹을 수 있는 곤충, 손을 대서는 안될 독초의 이름과 모양새까지 소상히 그려져 있다.그 숲에서 먹을 먹을 수 있는 풀과 뿌리로 야생 양파, 민들레, 감초, 쐐기풀등이 적혀 있고, 특히 쐐기풀의 경우 「잎사귀는 물에 살짝 삶아 먹을 수 있고 일단 요리할 경우 그 풀이 지니는 독성이 중성화된다」는 요리법까지 기재돼 있다. 섬유질이 듬뿍 든 나뭇가지를 힘껏 비틀면 껍질이 벗겨지고, 그 껍질을 꼬면 튼튼한 노끈을 만들 수 있다고도 적혀 있다. 비와 바람을 피하는 방법, 팔목이 부러졌을 때 부목을 대는 방법도 들어 있다. 이 기사를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읽다 정말 감탄했다. 한 미군 조종사의 비상수칙으로 그치는 얘기가 아니다. 미국 군대의 시스템을 말해 준다. 미군이 세계 최고로 강하다는 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적진을 탈출하는 방법이다. 비상수칙에는 「포로로 잡힐 경우 탈출의 의무를 지닌다」는 전시국제법 조항으로 부터 비상용 라디오 발신기를 활요하는 방법과 특히 라디오의 건전지를 절약해서 결정적인 구조의 순간이 왔을 때 그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법, 그 연기를 피우는 가장 유효한 시간때까지 깨알처럼 적혀 있다. 미군은 한마디로 과학으로 무장돼 있다. 이 과학이 그를 살려 낸다.
더 감탄한 일은 그의 탈출을 돕기 위해 헬기와 엄호용 전폭기등 40여대의 미군기가 동원, 근 40시간에 걸친 작전을 통해 그를 마침내 구해 냈다는 점이다. 늑대 소굴에 팽개쳐진 양 한마리를 구하기 위해 40여명의 목동이 만 이틀동안 단 한 숨도 눈을 부치지 않고 동원된 셈이다. 세계 어느나라 군대가 이런 「무모」한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강한 군대의 밑바탕에는 이런 인권이 깔려 있다.
살아 돌아 온 오글래디 대위가 항공모함 갑판에 서서 백악관의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다.
클린턴: 『온 나라가 귀관 문제로 노심초사(ON PINS AND NEEDLES)했오. 귀관의 활약이 어떠했는지는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소』
오글래디 대위:『제 구출작업을 벌인 전우들 모두가 진짜 영웅들이었습니다.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각하!』
클린턴:『말씀 하시오』
오글래디:『미 합중국이라는 나라, 정말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 신이여, 이 나라를 축복하소서!』
클린턴:『아멘!』
국가를 생각한다. 또 그 국가의 원형질을 「절대정신」으로 본 헤겔의 말을 생각한다. 자기 조국에 감사하고 신에게 축복을 비는 전투기 조종사를 둔 나라, 또 이에 아멘『하고 맞장구 치는 대통령을 둔 나라, 이런 감동과 전율의 나라가 바로 헤겔이 본 나라가 아닐까. 나라는 감동을 호흡해야 산다. 결코 관념적 존재로만 그치는 것이 나라가 아니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것,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으로 본 헤겔의 참 뜻이 와 닿는다.
감동이 없고 감동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국가 지도자는 군림은 할 뿐 결코 기억되지 않는다. 그런 지도자는 마부는 될 망정 기수는 되지 못한다. 전투기 조종사의 귀환이 몰고 온 감동을 주무기로 클린턴 대통령은 다음 해 재선에 거뜬히 당선됐다. 그리고 르윈스키 스캔들로 얼룩진 성조기를 빨기 위해, 또 잔여 임기동안 자신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 예의 감동의 재충전을 시도하고 있다. 지치고 시달려 온 피고석을 훌쩍 튀쳐나와 이제 미 합중국 최고 군사령관 의자에 되앉아 제2의 오글래디 대위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의도적으로 확전기미가 역연한 코소보 전쟁의 숨은 그림을 나는 그렇게 찾아 읽는다.<언론인·우석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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