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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삼동 오전9시.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은 회사원들이 모내기라도 하러 가는지 구멍이 송송 뚫린 고무샌들을 신고 지나간다. 유명한 미국 신발 브랜드 '크록스(CROCS)' 직원들이다. 크록스에서는 넥타이를 맨 부장급도, 스키니진을 입은 여사원도 형형색색의 크록스를 신고 출근한다. '정장=구두'라는 공식을 깬 크록스의 발칙한 기업문화다. 크록스는 '못생겼지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임을 자처한다. 뭉툭한 고무신 같은 디자인은 예쁘지는 않지만 발이 편하고 숭숭 뚫린 구멍(일명 에어홀)은 통풍이 잘돼 시원하다. 강남 한복판에서 단체로 크록스를 신다 보니 홍보효과는 물론 직원들의 애사심까지 높아졌다. 직원들의 긍정적 에너지는 실적으로 이어져 크록스는 지난 5월까지 매출이 전년 대비 65%나 신장했다. 최근 들어 이처럼 일상과 고정관념의 파괴를 시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제조사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핸드폰 운영체계의 개발권을 일반 소비자에게 공개해 '아이폰 신화'를 창조한 애플처럼 사고와 습관의 벽을 넘어 생산성을 꾀하는 경영기법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예는 또 있다. 글로벌 색조전문 브랜드 '맥(MAC)' 직원들은 매주 월요일이면 옷부터 액세서리까지 전부 검은색으로 차려 입는다. 아이섀도 종류만도 100가지가 넘고 립스틱만도 50가지를 넘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조'를 자랑하는 맥에서 다른 색도 아닌 검정색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것은 차라리 도발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검은색은 장례식장 색이 아닌 가장 화려한 색깔'이라는 맥의 주장이 담겨 있다. 양진화 맥 브랜드홍보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검은색은 메이크업뿐 아니라 패션에서도 가장 어두운 색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다른 색들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리는 화려하고 실용적인 색이라는 게 맥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역발상은 맥의 사업전략과도 맞아 떨어진다. 대다수 화장품 브랜드들이 색조에 비해 단가가 높은 스킨케어 제품에 투자할 때 맥은 거꾸로 색조시장에 집중해 '분홍 립스틱'열풍을 일으키며 지난해 39%의 매출신장을 달성, 백화점 색조 브랜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일하지 말고 놀자!'는 역발상을 실천하는 기업도 있다. ' CJ인터넷에서는 매주 금요일을 '게임데이'로 정해 직원들에게 오후 2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게임을 권장한다. 게임업체인 만큼 게임을 잘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기업문화다. 주제에 대한 간단한 분석 내용을 제출한 직원 두 명을 선정해 상품권 등 선물도 준다. 팬시 업체 바른손카드에서는 버릇없는 게 곧 능력이다. '야자타임'과 비슷한 '번개승진데이'를 정해 특별한 프로젝트나 아이디어 회의 때 직급에 관계없이 적합한 직원을 팀장으로 뽑는다. 막내 직원이라도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으로 발탁되면 이사나 부장에게 반말을 할 수 있다. "사내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책임감을 느끼게 해 업무효율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펜디 등 명품 선글라스를 독점 공급하는 롭옵틱스에서는 직원들에게 선글라스 착용을 장려한다. 이곳 직원들은 5~8월이면 점심시간 동안 선글라스를 의무적으로 착용, 회사는 누아르의 주인공들로 붐빈다. 서양과 달리 선글라스 착용에 익숙지 않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선글라스 착용의 일상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기업들의 이 같은 문화는 '미스치프(mischief) 마케팅'에서 기인한다. 익살 마케팅, 유머 마케팅이라고도 하는 미스치프 마케팅은 특정집단에 기상천외한 재미있는 방법으로 관심을 끄는 전략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때 기계적인 생산성 혁신추구 방식이 통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같은 공급과잉 시대에는 튀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며 "직원의 감성ㆍ체험과 재미를 자극하는 동시에 외부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하는 새로운 경영의 패러다임이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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