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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地思之’로 살맛나는 사회를
입력2004-03-08 00:00:00
수정
2004.03.08 00:00:00
며칠 전 개발회사 홍보 담당자들이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솔직히 말해서 모임을 주선한 사람과의 `관계`만 아니라면 굳이 만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모임이었다. 업계에서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모임들이 있지만 시행회사 홍보 담당자들끼리의 모임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무튼, 다들 초면이었지만 비슷한 애환(?)을 지녀서인지 금방 대화에 빠졌다. 이때의 애환이란 기자에게 보낸 보도자료가 기사화되도록 `부탁`해야 하는 입장을 말한다. 그런데 부탁 그 자체보다 부탁해야만 하는 `위치`를 즐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찍부터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부모를 잘 만나 남보다 앞서 출발하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보통 사람들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업종과 직종의 차이만 날 뿐 다들 비슷한 애환을 겪는다. 이때의 애환을 정확히 표현하면 아마도 `갑`과 `을`의 관계라고 표현될 것이다. 인허가 담당 공무원과 담당자, 대기업과 협력회사,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은행과 대출인 등. 갑과 을로 표현되는 `관계` 자체가 인간사회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이로 인해 적지않은 사람들이 오늘도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관계를 잘 풀려고 각종 연(緣)을 동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갑이 되려고 더 노력을 하기도 하고, 어떤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들이 애초에 출발이 다르도록 오늘도 치맛바람을 휘날리고 있다. 어떻게든 `밑`이 아니라 `위`에 서게 말이다. 그러나 성공ㆍ출세ㆍ부를 추구하는 노력이 사회발전의 한 동력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결국 누군가 갑이 되면 누군가는 을이 된다는 사실이다. 설령 자기가 현재 갑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을이 될 수 있고.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이라는 저명한 사회학자는 미국사회가 지나치게 획일화되고 파편화돼 사회적 생활(associational life)이 약화됐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관계`를 지나치게 갑과 을로 대하면 서구사회보다 더 살맛이 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서구사회는 개인주의에 기반한 사회지만 우리 사회는 비록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과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한번 역지사지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의 차이가 보이고 그때 `관계`가 즐거워질 것이다. 모두의 관계가 편해지면 우리 사회도 살 만할 것이다.
<솔렉스 류지석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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