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경제팀 수장은 과거 소신이나 발언에 얽매이지 말고 현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연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성향상 친기업적인 친시장론자로 분류된다. 대체로 이런 유형의 경제 사령탑은 경제성장과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는 대폭 풀되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는 정책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최 후보자를 시장방임론자로 보기는 어렵다. 정치인 시절 행보를 보면 그렇다. 다만 정치인 시절의 견해와 입장 표명이 부총리로서 행보에 걸림돌이 돼서는 산적한 경제 현안을 풀기 어렵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 시절의 견해와 국민경제를 책임져야 할 부총리로서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며 "이 점을 최 후보자는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대중영합적인 정책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최 후보의 최근 발언은 사안별로 온도차는 있지만 거시와 재정·환율 정책 측면에서 과거 지식경제부 장관이나 당 원내대표 시절과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보이고 있다. 최 후보자는 지명 후 언론과의 자리에서 우리 경제가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하며 정책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쌓아가되 단기 처방이 필요한 부분은 과거보다 더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기조 변화를 예고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최 후보자는 거시정책과 관련해 "경제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경제팀은 과거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틀에 박힌 대책을 답습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다 부총리 지명 후 "지표를 보고 정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를 살피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거시경제 정책을 관행적으로 지표에 의지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체감 경기를 더 중시하겠다는 내용이다. 정책 입안의 근원적 인식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 체감 경기와는 동떨어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고용과 물가지표 등을 근거로 한 정책 수립을 지양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대비되는 것은 환율정책. 지난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환율 대응에) 정부가 손 놓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기획재정부를 질책했지만 부총리 지명 후에는 "환율은 가격변수라는 것이 민감해 이랬다저랬다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환율(정책)은 국민 행복이 같이 가야 한다. 고환율 정책은 국민 삶의 질로 나타나야 의미가 있기에 그런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고 했다. 무질서한 환시장 변동에는 대응하겠지만 그렇다고 '환율상승=절대선'이라는 수출지상주의적 접근 방식에서 탈피하려는 것이 아닌가 관측된다. 당 대표 시절 정부가 적극적으로 환율 변동에 대응하라고 주문했던 과거와는 입장 차이가 엿보인다. 정부가 채산성 악화 등 수출기업 피해를 이유로 환율에 개입했던 것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에 수입물가 하락이 세월호 참사 후 침체된 내수 시장 활기를 되찾는 유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정정책에 대한 미묘한 인식 변화도 감지된다. 수년 전 최 후보자는 기계적 재정 균형을 맞추기보다 (재정을 더 투입해서라도) 성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이제는 "시장 권력이 커져 정부 권력이 맞서기 어렵다.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윤활유를 쳐줄 수는 있지만 개발 시대처럼 다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재정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장이 잘 돌아가게 보조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월급과 부동산 주식은 시장이 올려주는 것이지 부총리가 올려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언급은 최 후보자의 인식 변화를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입각 후 최 후보자가 이런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현실에 맞는 정책을 적기에 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의 연구원은 "2기 경제팀은 필요하다면 대통령 공약도 수정할 수 있을 만큼의 유연한 사고로 정책에 임해야 한다"며 "과거의 소신이나 발언보다 중요한 것이 미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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