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에 속하는 미국계 사무용품 업체 오피스디포는 지난 2012년 조달청과 MRO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공공 MRO시장의 80%에 달하는 대규모 계약이었지만 '대기업을 배제하더니 중소유통상이 아닌 외국계 기업과 계약을 한다'는 여론의 성토에 계약은 대폭 축소된 채로 진행됐다. 한동안 잠잠하던 오피스디포는 최근 국내 MRO 업체인 큐브릿지 인수전에 또다시 등장했다. 인수는 결국 불발됐지만 오피스디포와 함께 뛰어들었던 프랑스 MRO 업체 리레코를 비롯해 국내에 이미 법인을 설립한 글로벌 MRO사들은 앞으로도 인수전에 적극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창업과 정보기술(IT) 열풍이 불던 2000년 무렵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나가는 전자상거래 선도 국가였다. 일찌감치 국가의 성장동력으로 e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알아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B2B전자상거래 비즈니스를 개척한 기업의 발빠른 움직임이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기존 글로벌 MRO 기업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창고 기반의 오프라인 영업을 탈피해 구매 IT 시스템과 대단위 물류센터, 구매전문인력 양성 등 대규모 투자로 E-MRO 모델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국내 MRO 기업들은 글로벌 MRO 기업들에게 안방을 점차 내주는 것을 넘어서 이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산업 자체가 전반적으로 침체되며 기업들이 개별적인 경쟁력을 잃은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국내 기업들이 주춤한 사이 외국계 기업들의 국내 진출은 가속화됐다. 특히 2011년 11월 정부의 '대기업 MRO 사업제한' 방침이 나온 이후부터 외국 MRO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 속속 들어오는 추세다. 특히 국내 대기업이 신규 영업을 할 수 없는 정부 공공기관, 중소기업까지도 영업 대상으로 빠른 속도로 확대하고 MRO사업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산업 침체를 벗어나 글로벌 B2B 전자상거래 업체가 탄생하려면 국내 시장에서 구매력 확보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한 뒤 공동구매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핵심 비즈니스 모델인 만큼 국내에서 기반이 없다면 해외에 나가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업계관계자는 "해외진출은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수요와 글로벌 MRO기업들과의 수주경쟁 2가지가 있다"며 "특히 국내시장에서 쌓아온 고객과 경험이 부족할수록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고객사들을 보유한 글로벌 MRO업체들과 경쟁해 수주를 따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했다.
MRO산업의 전후방 파급효과를 위해 과감한 규제 혁신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종성 엑센츄어테크놀러지 그룹 대표는 "MRO사업은 일반적으로 B2C에 비해 거래 건수 대비 거래규모가 월등히 큰 만큼 B2B 거래제한은 전자상거래 위축에도 큰 영향을 준다"며 "MRO는 사업특성상 IT, 물류 등의 인프라에 대해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지만 관련 규제가 국내 MRO산업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해 결국 전체적인 산업의 침체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대표는 "이제라도 투자 확대와 산업재 유통산업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합리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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